아카데미 시상식 결과 봤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무려 7관왕을 했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주요 부문을 휩쓸었으니 정말 어마어마한 기록이야. 그 와중에 선전한 영화는 외국어영화상, 촬영상, 미술상, 음악상, 이렇게 4관왕을 한 <서부 전선 이상 없다>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 이변이 없다는게 이변이었던 이번 아카데미를 보자니 너무 소수의 영화에 편향된 것은 아닌지, 그 자리에 오른 수많은 제작진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 시상식이 끝나면 수상이 불발된 영화들은 놀랍게도 빠르게 관심에서 사라지곤 해. 마틴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는 차례로 이번주, 다음주 개봉하니 이 두 영화에도 관심 가져주면 좋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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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장르물에 빠져 살다가 모처럼 지난 주말 잔잔한 영화를 한 편 봤어. 마이크 밀스 감독의 <컴온 컴온>이 왓챠에 드디어 공개되었거든! 감독의 전작 <비기너스><우리의 20세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분명 공감하는 감성이 있을거야.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어. <컴온, 컴온>은 흑백이라는 점, 그리고 전작들이 개인의 과거와 그 시대의 사건들을 연결지어 현재의 한 인물을 설명했다면 이번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물과 도시의 현재를 연결짓는다는 점이야.
<컴온 컴온>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조니는 어린이들을 만나 어른들과의 관계와 그들이 바라보는 삶의 시선, 미래를 인터뷰하는 사람이야. 카메라가 아닌 녹음기로 그들의 말을 듣고, 하루의 끝엔 녹음기로 일기를 구술하곤 해. 혼자가 익숙한 조니는 아마도 어머니의 기일이었던 날 오랜 시간 연락을 끊었던 여동생 비브에게 전화를 걸고, 마침 정신병원에 입원하길 거부하는 남편과의 문제로 집을 비워야 했던 여동생을 대신해 조카 제시를 뉴욕에서 돌보게 돼.
언제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조니지만, 막상 9살의 낯선 조카를 마주하니 예상치 못한 일들에 평정심을 잃는 일이 자주 일어나. 대도로변에서 느닷없이 사라지거나 고아인척 연기하는 상황극에 참여해야하거나 또래 아이와는 사뭇 다른 오싹한 관심사들에 대해 들어줘야하는 일들이 태반이야. 처음엔 금쪽이인가 싶을 정도로 제시의 행동은 관객에게도 당황스럽게 다가오는데, 그때마다 조니 역시 아이를 대하며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감정과 태도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괴로워하곤 해. 그런데 이 이야기의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제시의 질문이야. 질문하고 듣기만 했던 조니에게 거리낌 없이 제시가 던지는 질문들은 조니가 묻어두었던 자신을 마주하게 만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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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시선이 따뜻한 이유는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가 얼마나 타자화된 사람인지 느끼게 하기 때문이야. 제시는 갑자기 사라진 아빠의 사정을 정확히 알 수 없고, 막연하게나마 사랑받았던 과거를 그리워하며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여있어. 제시는 아이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슬픔과 기쁨을 표현하지만, 그것이 때론 어른에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처럼 보이곤 해. 우리의 생각보다 아이의 마음 안엔 깊고 거대한 감정들이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야. 물론 이건 단순히 아이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야. 당황스러웠던 제시의 모든 행동과 질문은 조니와 비브에게 현재를 묻는 인터뷰와 같거든. 끊임없이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에게 제시는 우리가 일어날 거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일어나지 않고, 오로지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모든 것이 일어날 거라 말해. 그러니 그냥 지금 하라고. 마지막에 이르러 나오는 제목의 비밀 앞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밖에도 아이를 키우는 여성의 입장을 비브를 통해 현실감있게 그린 점이 좋았어. 누구나 완벽한 부모를 꿈꾸지만 진짜 육아란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여실히 보여줘. 그저 서로를 향한 인내와 사랑, 솔직함만이 그 시간을 구원해줄 뿐이야. 그리고 그 안에서 어른, 아이 할 것없이 온 몸으로 새로운 세상을 부딪혀가며 성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이 누구나에게 평등한 사실 같아서 좋았어. 그들의 인터뷰와 대화 사이 짧은 소설들을 읽어주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전반적으로 오디오북을 듣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 시각보다는 청각에 집중하도록 유도된 영화거든. 우리는 정말 상대의 말을 듣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기도 해. 사는 일에 대해 생각이 너무 많아지는 때가 오면 이 영화를 보길 추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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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데반테 브라이언트에게 영화를 바친다”는 자막은 뉴올리언스에서 인터뷰이가 됐던 아이라고 해. 총기사고로 10살 생일 전 세상을 떠난 슬픈 사연이 있어. 뒤에 이어지는 크레딧에는 음악 대신 실제 아이들의 인터뷰가 등장해. 영화 속 인터뷰들이 모두 연기가 아니라고 해. 그 말들을 듣고 있으면 이 작은 몸 안에 얼마나 깊은 우주가 펼쳐져 있는 걸까 경이로워. 어떤 음악보다 감동적인 마무리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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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A24가 영화 뿐 아니라 굿즈도 잘만든다는 사실 알 사람들을 다 알거야. <컴온 컴온> 굿즈로 영화의 촬영 세트와 배경이 된 도시를 스케치한 일러스트북이 있어. 보통 프로덕션 노트는 사진으로 찍는게 일반적인데 이런 감성의 차이가 이 영화의 매력인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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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밀스 감독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항상 따뜻하고 잔잔해서 평화로운 기분이 들어. 살짝 흐린 날 들으면 어울릴 것 같은 음악이야. 전체 리스트를 듣고 싶다면 여기를 클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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