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비를 몰고다니는 아메온나. 여행가는 날 먹구름이 밀려오고 길을 걸으면 비가 쏟아지다가 차를 타면 멈추는 사람 그게 나야. 맞아 어제 퇴근길 쏟아진 폭우에 쫄딱 젖었는데 버스타자마자 멈췄던게 분해서 쓰는 글이야. 그런데 부정적 경향성에 대한 믿음은 얼마나 정확할까? 실제로 이동 중에 맑았던 날과 비가 왔던 날을 세어보면 절대적으로 맑았던 날이 더 많지 않을까? 오빠랑 대화하다가 이런말을 들었어. 징크스를 강하게 믿는 사람은 단 한번의 불운에도 2년이 지난 예언과 연결시킨대. 역으로 불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게 된다는거야. 안좋은 일은 그냥 때때로 일어나. 이유는 없겠지. 그럼 왜 나만 운이 안좋아야 하나 억울한 마음이 들지만 사는게 그렇다고 하더라. 얼마 전 읽은 소설에서 ‘늘 그렇듯 최악의 시나리오는 애쓰지 않아도 술술 풀린다. 어떤 개연성이나 인과도 없이 그럴듯한 장면을 선사하고 믿게 한다. 반면 낙관적인 상상은 어딘가 엉성하다’라는 구절을 읽고 웃었어. 부정적 상상은 아무 관련 없는 산발적 불행들을 쉽게 연결하고 필연이나 운명같은 그럴듯한 개연성을 만들곤 해. 예전에 상담 선생님이 부정적인 만약에 말고 긍정적인 만약에도 많이 떠올리랬어. 좋은 일에도 이유를 많이 붙여주자. 이유없는 불운은 흘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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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디드 #요약
오늘 소개해줄 애플tv 오리지널 [크라우디드]는 2023년이 삼분의 일이나(밖에) (안)남았지만 미리 단언할 수 있는 올해 가장 인상적인 시리즈 중 하나였어. 1979년 맨해튼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대니(톰 홀랜드)와 심리학 박사 라이아(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대화 속에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심리 스릴러라는 것이 공식 설명이고, 실은 트라우마를 겪은 모든 생존자들에게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하는 구원의 메시지야. 원제는 'The Crowded Room'인데 초반엔 대니와 라이아가 만나는 방을 떠올리겠지만 실체에 다가갈수록 발견의 희열과 슬픔의 전이가 함께 찾아올거야. 톰 홀랜드가 처음으로 제작자로도 참여한 작품이야. 작품성에 비해 소문이 덜 난 건 아마 이 애매한 포스터 때문 아닐까? 직업병이 발동해서 새로운 포스터를 만들어주고 싶어졌어. 그리고 제발 아무 검색 없이 봐줄래?😅 검색하자마자 소개되는 영화의 어떤 정보 하나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할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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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질문의 의미는?
사건의 전말은 간단해보여. 같은 하숙집에 살던 아리아나(사샤 레인)의 부탁으로 대니가 누군가를 총으로 쏘려 시도하다 실패하자 아리아나가 그 총을 빼앗아 도망가는 대상을 향해 무차별 난사를 한거야. 대니는 잡혔고, 아리아나와 하숙집 주인인 이츠하크는 동시에 사라졌어. 라이아는 동일한 질문을 반복해. “아리아나와 이츠하크는 어디 있을까요?” 언뜻 단순해보이는 이 사건에 경찰은 왜 심리학 박사까지 동원하여 그들의 질문을 대신 던지게 하는 걸까? 우리는 철저하게 대니의 시선으로 자신을 향한 여러 오해들을 벗어내고 싶은 답답함을 느끼게 돼. 그러나 대니와 라이아의 관계맺기가 지속됨에 따라 이야기하는 입장에서 듣는 입장으로 우리의 시선은 전복되어 종국엔 라이아처럼 묻게 될거야. “아리아나와 이츠하크를 만난 건 우연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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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까지는 꼭 볼 것!
6화는 여러모로 이 시리즈 안에서 가장 탁월하고 중요한 회차야. 단 한번도 어른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던 대니의 서사에 충분히 들어왔다고 여길때쯤 갑자기 라이아의 시선에서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따라가거든. 시리즈의 절반동안 대니의 기억에 난 크고 작은 구멍들을 메울 수 있는 힌트를 기다려왔으니 왜 1화의 시점으로 되감아 온건지 의아할 수밖에. 스토리텔링 중심의 정직한 연출에 충실한 듯한 [크라우디드]는 사실 시청자가 당연한 착각에 빠지도록 유도하고 있어. 나와 라이아가 동일한 정보를 알고 있을 거라는 착각, 라이아, 대니, 나 셋 중에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대니여야 한다는 착각 말이야. 인식과 현실의 간극이 가시화되며 라이아의 질문이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밝혀지는 순간 [크라우디드]는 놀라운 반전에 호들갑을 떠는 대신 라이아가 받아들인 정보에 합당한 최선의 태도를 취하기로 해. 라이아가 계속해서 대니에게 같은 질문을 하는 이유는 트라우마란 자신이 직면하려 노력하는 행위에서부터 치유되기 때문이야. 누구도 대신 극복해줄 수 없어. 6화의 마지막 장면은 실제로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감당하기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그 무게를 상징적으로 담아냈어. 피해자들의 세계 바깥에서 그들의 아픔과 일부 만난 것만으로도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충격의 정도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가슴 깊이 박힌 장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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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해 줄 단 한사람
사람들은 자신이 견딜 수 없는 감정은 상대에게 전가해서 그들의 감정인 것처럼 분리하는 습성이 있대. 극 중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내리는 인물이 있어. 외면하고 싶은 자신의 죄책감을 라이아에게 덮어씌우는 장면을 보며 혈압이 오르는 와중 라이아는 이렇게 말해. 어릴 적 학대 당한 사람들은 학대 당하도록 훈련 당했고, 가해자들은 먹잇감을 발견하는데 익숙하다고. 그 어떤 것도 피해자가 통제할 수 없으니 그 무엇도 피해자 탓이 아니라며 당신의 선택도 당신 탓이 아니라고. 난 그 장면에서 너무 부끄러웠어. [그것이 알고싶다]를 즐겨보는 편인데 주로 피해자의 옆엔 보통의 사람들은 감지할만한 질 나쁜 사람들이 있더라고. 사람보는 눈이 부족했던 탓도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하고 있었던게 생각났어. 라이아는 상처받은 사람들에겐 자기만의 이유가 있다고 말해. 밤에 혼자 걷지 말아야했어, 짧은 치마를 입지 말아야했어, 화내지 말아야했어, 말대꾸하지 말아야했어 같은. 하지만 나쁜 일은 일어나고, 그게 전부 우리탓이 아니라고 인정하기 전까지 회복을 시작할 수 없대.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와 2차 가해를 체득해서 자신의 탓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의 연결고리를 분명하게 지적하는 게 좋았어. 이 모든 시선의 기반은 연약한 인간에 대한 무한한 연민과 사랑이야. 그 위에 구축되어야 하는 건 단단한 사회적 안전망이고. 어찌보면 거대한 담론이지만 이 담론의 최소 구성 단위는 개개인이라서 당장 내 옆의 사람들을 관심있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을거야. 나를 자세히 바라봐주는 단 한 명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는 게 사람이란 존재같아. 달리 말하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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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1
비틀즈의 Let It Be는 이제 너무 유명해서 통속적인 노래처럼 들릴 때가 있어.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이 노래는 완벽한 선택이었다고 봐. 보면 알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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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2
오프닝 크레딧 장면이 일러스트로 구성되어있는데, 이 그림의 비밀이 마지막 화에서 밝혀질 때 디테일에 미치는 나는 입을 틀어막고 말았어. 이 말 밖에 할 수가 없네. 보면 알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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