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화요일 저녁, 어떤 영어 과외 선생님의 답답한 잔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네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 난 카페인이 몸에 안받아서 커피를 마시지 않아. 아침에 카페인 없이 출근하는 광기의 직장인 그게 바로 나야! 여하튼 자연스럽게 카페보단 술집을 좋아했는데 요샌 술은 거의 안마시고 이상하게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됐어. 나름 맛있다, 맛없다도 구분할 줄 알게 된 것 같아. 얼마 전까진 경험치가 아예 없으니 맛에 대한 기준도 없었거든. 수영도 이제 완전하진 않아도 자유형 25m를 멈추지 않고 갈 수 있어. 태어나서 가장 수영을 잘하는 상태랄까? 그리고 너무 멍청하다 싶은 와중 유튜브에서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책과 영화에 대한 정의를 보고 8월부터 매월 책을 읽기 시작했어. 살면서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을 때 이런 소소한 진전이 위로가 돼. 아직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조금은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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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관하여 #요약
지난 달 읽고 충격과 감동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던 정보라 작가의 소설 [고통에 관하여]를 추천할게. 부작용도 중독성도 없는 진통제가 발명된 후 고통의 개념은 신체적 고통으로 한정되었고, 고통을 견디는 일은 정신병으로 취급되는 시대가 찾아왔어. 이에 반해 고통을 견디면 견딜 수록 더 높은 차원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이비 종교단체도 생겨나 광신도들이 진통제를 발명한 제약회사에 폭탄 테러를 하기에 이르러. 이야기는 테러가 일어난 몇 년 후, 광신도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시점에서 시작돼. 진통제는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 주었나? 고통을 신봉하도록 변질된 종교의 시작은 무엇이었나? 그 이전에 사람들은 왜 믿는가? 고통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러한 무게감 있는 철학적 질문들을 따라가는 동안 놀랍게도 빈틈 없는 장르적 희열을 주는 소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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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과 추리
모종의 이유로 한 비행기를 탄 6명의 인물들로 이야기는 시작해. 사이비 교단의 폭탄 테러로 부모를 잃은 제약회사 대표의 딸 경과 그저 태어나서부터 믿는 것 외의 선택지가 없었던 테러범 태, 제약회사의 현 대표 현, 태의 정신과 의사, 그리고 경찰 두 사람. 테러 이후 잠잠하던 교단의 광신도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자 이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선 안되는 이들이 몇 년만에 모이게 된거야. 자신의 부모를 죽인 태에게 이상하리만치 호기심을 갖는 경, 자신의 행동에 질문해본 적 없는 태의 자각을 중심으로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또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어. 초반에는 다소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려울 수 있어. 그들의 이름도, 배경도 등장하지 않거든. 이게 무슨 상황이지? 라는 물음표가 가득한 상태로 시작해서 각 인물들의 이름이, 과거가 차례대로 드러나는 미스터리 구조야. 재미있는 건 인물 이름이 모두 한 글자야. 헷갈리겠지? 하지만 익명성이 이 소설의 핵심 기법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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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의미에 관하여
[고통에 관하여]는 익명에 이름을 부여하는 순서만으로 이야기를 쥐락펴락하는데 특히 후반부 교단의 시작이 밝혀지는 순간 ‘고통’이라는 주제를 관통하며 아주 드문 짜릿함을 경험했어. 개인적으로 올해의 화두는 사람은 왜 믿는가, 그리고 고통은 인생에 어떤 의미인가 두 가지야. 마침 [고통에 관하여]를 읽기 전 김희재 작가의 소설 [탱크]와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를 읽었던 참인데, [탱크]에서는 고통이 주는 생의 감각이라는 아이러니가,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에서는 어차피 삶은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니 기쁨보다 고통을 사랑해야 한다는 메세지가 인상적이었어. 하지만 인생에 고통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면 과연 고통이 어떤 의미로 남는지, 왜 고통의 양은 공평하지 않은지에 대한 질문이 남았어. 정확하게 말하면 종교에서 말하는 죄나 업보를 지우는, 죽음 이후의 삶을 위한 구원으로서의 고통의 의미에 충분히 설득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 그 때 [고통에 관하여]에서 간결하게 “고통에 의미 같은 건 없습니다” 라고 말해줬어.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라고 말이야. 구원의 여지를 지운 고통만이 남은 세상에서, 그렇다면 인간은 고통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고통에 관하여]는 그저 비관주의의 결과일까? 경이 결말에 이르러 깨닫는 고통에 대한 탐구의 결과는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끔 하는 지독한 희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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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판타지
다 보면 알겠지만 예상치 못한 판타지 세계관이 등장해. 그럼에도 이 소설은 누구보다 현대사회 한 가운데에 있는 이야기라고 느껴져. 그 이유를 작가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어. 의외로 [고통에 관하여]의 시작은 지극히 현실에 닿아있는 시선이었거든. 인간을 정신적, 신체적으로 착취하는 사이비 종교를 비롯해서 여성, 아동을 향한 가정폭력,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세상에서의 불안감들이 언급되더라고. 이 소설엔 다양한 사회적 약자가 등장해.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달아나 살아남기 위해 교단에 들어간 어머니, 옳고 그른 판단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모태신앙의 아이들, 견딜 수 없는 현실을 견디기 위해선 고통이 차라리 구원이길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동성결혼이 가능한 사회에서의 성 소수자 등 소설 속 근미래의 비현실적 세계는 현 시대의 투영인거지. 사회를 직면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고통에 관하여]가 말하는 ‘고통’의 개념을 다층적으로 심도 깊게 파고들었다고 생각해. 여러모로 만족스러웠고 영화로 다시 보고 싶기도 했어. 하지만 활자 안에서만 가능한 익명성의 반전이 영화에서도 가능할까 싶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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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1
작가의 전작 [저주토끼]는 작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었는데,(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수상했던 부문) 최근 한국작가 최초로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해. 올 봄 개정판이 다시 발간되었다고 하니 이 버전으로 나도 읽어봐야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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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2
화제작이긴 한가봐! 출간 거의 한달만에 오디오북이 나왔어. 네이버 오디오클립과 교보문고 두 군데에서 들을 수 있는데 오디오클립이 더 저렴해. 러닝타임은 약 7시간 미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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