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을 10번만 보내면 올해가 끝난다는 사실을 어제 알았어. 올 초에 기대했던 이맘때쯤의 희망들은 많이 이루어졌어? 목표를 잡는건 참 어려워. 최근 24년 사업계획을 짜고 있는데 달성 가능성과 상관없이 무조건 상향되는 목표를 보면 오히려 생기려던 의지도 사라지더라고. 내년의 나는 어디까지 바랄 수 있을까?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비교적 현실성 있는 목표를 세워야할까 싶다가 1년 전의 내가 바랐던 건 어떠한 것도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것마저 욕심이었나 슬픈 순간이 종종 찾아와. 하지만 그래도 어떤 희망은 이루어질 때까지 버릴 수가 없어. 어떤 선택이 답일지 아직 모르겠지만 모두가 남은 10주 동안 덜 상처받고 더 웃을 수 있을 정도의 목표와 바람의 싱크를 맞출 수 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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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셔가의몰락 #요약
눕방일기에서 여러번 소개했던 마이크 플래내건 감독의 신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어셔가의 몰락]을 소개할게. 에드거 앨런 포의 동명소설 원작으로 감독의 전작을 한 편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단 번에 그 선택을 납득할 수 있을거야. 원작의 뼈대만을 남겨놓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드라마 [어셔가의 몰락]은 지난 주 소개했던 소설 [고통에 관하여]처럼 ‘부작용도 중독성도 없는 진통제’ 리고돈을 만드는 ‘포추나토’ 제약사의 재벌 어셔 가문에 관한 미스터리 드라마야. 포추나토의 CEO 로더릭 어셔는 자녀들의 장례식장에서 어떤 환영을 보는 듯해. 그리고 이내 쓰러지고 마는 로더릭. 그로부터 불과 2주 전, 6명의 자녀가 모두 살아있던 때 검사 오귀스트 뒤팽은 리고돈으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밝히고자 재판에서 어셔가에서 증인을 확보했다고 언급했어. 어셔가의 몰락이 시작된 결정적 사건이었는데, 로더릭이 자녀들에게 그 ‘배신자’를 밝히면 포상금을 주겠다며 사실상 현상금을 걸었고 그 후 로더릭의 2세가 모조리 돌연사 한 거지. 결국 로더릭은 뒤팽을 불러 모든 걸 자백하겠다고 해. 로더릭이 들려주는 모든 진실들, 6명의 자녀들이 죽은 진짜 이유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아주 오래 전 결정되었던 로더릭의 숙명에 관한 비밀로 향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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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한 가운데의 여인
포추나토는 로더릭보다 훨씬 똑똑하고 냉정했던 쌍둥이 남매 매들린의 모든 설계 하에 탄생한 기업이야. 본래는 그들의 어머니가 포추나토 CEO의 비서였을 뿐이야. 어셔 남매는 어떻게 이 회사를 손에 넣었을까? 심리호러가 장기인 마이크 플래내건 감독답게 이번 드라마도 초현실적 존재와 현상을 중심으로 사건이 흘러가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들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어. 특히 어셔 남매가 더 큰 부를 향해 집착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단계적으로 그리며 그들의 선택이 어떻게 현재의 사건을 만들어냈는지 촘촘하게 짜놓은 스토리텔링이 몰입감을 높이고 있어. 게다가 용감한 선택이라고 느꼈던 건 바로 로더릭의 자녀들은 죽는다는 결말을 알리고 시작했다는 거야. 답을 아는 이야기가 뻔하지 않은 이유는 그 중심에 있는 미스터리한 여인 베르나라는 캐릭터 때문이야. 1979년 어셔 남매가 알리바이가 필요해 들어간 한 술집의 주인이었던 그녀는 2023년 로드릭의 2세들이 차례차례 죽는 순간에도 여전히 같은 얼굴을 한 채 각기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곤 해. 베르나와 어셔 남매와의 관계는 무엇일까? 한 가문을 몰살해야 할만큼의 적의는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죽음 한 가운데에 나타나는 그녀의 의도와 시간을 초월한 존재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은 마지막까지 이야기의 긴장감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열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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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의 죽음
감독의 전작들도 현재와 과거의 교차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데 이번에는 현재 - 로더릭이 뒤팽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점, 가까운 과거 - 2주 동안 로더릭의 자녀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 먼 과거 - 로더릭과 매들린이 포추나토를 손에 넣기까지의 사건들, 총 3종류의 시간대를 넘나들고 있어.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는 시간 여행을 기술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우리는 로더릭의 의중이 파악되지 않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은 끝없이 빠져들고 가끔은 의심스러운 뒤팽의 입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드라마에 참여하게 돼. 다만 6명의 자녀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후반부로 갈 수록 베르나와의 연결고리가 다소 모호해진다는 점이 아쉬워. 스포가 될 것 같아 자세히 말할 수는 없는데 결국 그들을 파멸시킨 것은 어셔가라는 의도는 이해가 가지만 죽음이 여섯 번이나 쌓여갈 수록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아.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이정도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장르 드라마는 흔치 않다고 생각해. 감독의 전작인 [자정 클럽]에 크게 실망한터라 감독의 장기가 가득 담긴 이 드라마가 더 반갑기도 했어. 물리적 공간인 ‘집’을 ‘가족’이라는 주제로 확장하여 그들 사이에 주고받은 상처와 사랑들을 호러 장르와 접목시키는 감독만의 세계관을 다시 보고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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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각색
하지만 [어셔가의 몰락]은 전작과 달리 개인화된 감정에 집중됐던 섬세함이 사회적 이슈로 향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해. 이전 작품들에 비해 가장 성과 폭력의 문제가 가득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서로 끊임없이 경쟁하는 재벌가 안에서의 계급싸움과 약물 중독을 비롯해 도덕적, 윤리적 선택이 사라진 시대의 모습을 어셔가라는 한 가족으로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어. 에드거 앨런 포의 원작에서 공포에 잠식된 한 인간과 집의 붕괴라는 모티브를 차용해 현재의 사회 문제에 접목한 각색은 스토리텔러로서의 감독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기도 했거니와 새로운 시도였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 특히 마이클 플래내건의 호러엔 언제나 슬픔이 배어있어 여운이 많이 남는 편인데, 이번 작품에 남은 슬픔이라면 욕심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뒤늦게 깨닫는 한 인간의 회한 같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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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1
에드거 앨런 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숨겨진 장치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클 것 같아. 일단 검사인 오귀스트 뒤팽의 이름은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에 등장하는 탐정이야. 셜록 홈즈를 비롯해 이후 등장하는 추리소설 속 탐정의 시초라 할 수 있어. 로더릭의 아내의 이름 역시 [에너벨 리]인 걸 바로 알 수 있겠지? 게다가 총 8회차의 제목은 모두 작가의 소설 제목과 시에서 따왔다고 해. 이외에도 수많은 연결고리를 정리해놓은 블로그가 있어 첨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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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2
포추나토의 리고돈은 미국에서 문제가 되었던 퍼듀 제약의 옥시콘신을 떠올리게 해. 실 소유주인 새클러 가문은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 계열 옥시콘틴의 위험성을 숨긴 채 대량 유통했고 1999년부터 2019년까지 약 50만 명이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고 해. 이에 관한 드라마가 넷플릭스 [페인 킬러], 디즈니플러스 [돕식: 약물의 늪]으로 제작되었어. 법적 공방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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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3
이전 뉴스레터를 본 사람들이라면 지겹겠지만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해 한번 더 말해볼게. 마이크 플래내건은 웨스 앤더슨 못지 않게 같은 배우들과 작업하기로 유명해. 감독의 팬이라면 에드거 앨런 포의 흔적만큼이나 익숙한 배우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거야. 내가 검색해본 바로는 주요 주조연들 중에서 마이크 플래내건과 처음 작업하는 배우는 세 명 뿐이었어. 젊은 매들린, 검사 뒤팽, 어셔가의 변호사 핌. 10대들이 주인공이었던 [자정 클럽]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그 배우들을 [어셔가의 몰락]에서 다수 볼 수 있는 것도 귀여운 포인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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