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의 안녕! 나 지난 주에 빵 구워 먹으려다가 집에 불날 뻔 했어. 바게뜨에 선물받은 명란 스프레드를 듬뿍 발라 전자레인지에 4분 돌렸는데 2분이 되었을 때 빵에 불이 활활 타올랐어. 방 안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리고 연기는 자욱하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다행히 물 한잔 끼얹으니 꺼지긴 했는데 아직도 집에서 탄내가 나. 알고 보니 1분 30초만 돌리는 거였더라고😂 사실 이 전자레인지는 나의 스무살 첫 자취방에 먼저 살던 사람이 팔고 간거라 거의 20년을 향해가는 친구야. 내 친구들이 제발 버릴 때 되지 않았냐고 진저리 치는 리얼 빈티지랄까. 지금도 작동엔 아무 이상이 없는데 그을음이 안닦여서 이제 그만 보내줘야할까 싶기도 해. 무엇이든 인간의 마음이 향한 오래된 것엔 영혼이 깃들어 있을 것 같지 않아? 믿음은 강력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새로 살 전자레인지를 알아보다가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와 오븐 기능이 합쳐져있는 광파오븐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슬픈 마음은 어디가고 설레하고 있는 내 마음을 우리집 전자레인지에게 들킬까봐 미안해졌어. |
|
|
#백로식당 #요약
연재 3년 만에 완결 난 카카오웹툰 [백로식당] 정주행을 지난 주 연달아 두 번 하고 헐레벌떡 소개하려고 가져왔어. 요새 웹툰은 완결 후 바로 유료 되는거 알지? 그 전에 다들 빨리 봐야하니까 맘이 급했어. [백로식당]은 대대로 바리공주를 모시는 만신집안의 백로가 십이지신과 옥황상제와의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한국형 판타지야. 신은 인간이 믿어야 존재할 수 있는데 현대에 이르러 전통 신들을 믿는 사람들이 사라져가니 신의 죽음이 찾아왔어. 그 과정에서 마음이 곪아 탄생하는 게 악신이야. 악신들의 다친 마음을 음식으로 치료하는 만신이 바로 백로이고. 그러던 어느 날 십이지신 중 흑룡 진을 위한 음식을 만들라는 의뢰가 들어와. 십이지신은 그들을 만든 옥황상제로부터 사바세계의 인간들을 지키라는 명을 받은 신이야. 그런데 여러 재난 속에서 옥황상제가 연락이 두절된 채 인간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자 하나 둘 상제와 통하는 문을 포기했고, 진만이 유일하게 문을 지키고 있었던 거야. 거대한 신들의 혼돈에 휘말린 백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리공주를 안고 있는 자신의 운명이라는 걸 깨닫게 돼. 한국 전통 설화와 음식을 유려하고 재치있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백로식당]은 사라진 인류애를 재생시키는 것 같아. 백로의 음식을 먹고 보양을 하는 신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달까? 홀린 듯 빠져드는 누군가의 옛 이야기와 사람의 연약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시선, 먹음직스럽게 묘사되는 위로의 음식의 조화가 시린 마음을 덥혀줄거야.
|
|
|
#인간을 사랑한 신
진의 등장으로 백로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생겨. 첫 번째는 집안 소유인 줄 알았던 백로 집의 주인은 진이었고, 백로의 할머니인 백도사에게 쥐의 신 자서의 소개로 진이 집을 빌려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거야.(참고로 백도사와 백로 모두 쥐띠라서 이들은 쥐의 신들로부터 보호를 받아.) 두 번째는 진의 몸 속에 들어있는 불길하고 끔찍한 존재와의 조우야. 십이지신인 진조차 죽어갈 정도로 강력한 기운을 내뿜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거든. 도대체 진은 왜 자신의 형제자매인 십이지신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는 걸까? 십이지신은 앞뒤로 붙어있는 띠끼리 유독 친하다고 하지만 뱀신인 사하균과 진은 무슨 일인지 연을 끊었고, 토끼신인 묘월은 행방이 묘연해. 백로는 가족처럼 함께 살고 있는 호랑이 오택(백도사가 일제시대 호랑이 학살사건 때 그림 속으로 숨겨준 이시대 마지막 호랑이)과 집문서를 되찾기 위해 여러 신들은 물론 십이지신과의 만남을 갖게 되는데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끝엔 진이 품고 있는 악한 기운의 근원이 있어. [백로식당]은 애초에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존재로 신을 상정함으로써 가장 인간 가까이에서 인간처럼 살고 인간처럼 느꼈기에 인간으로부터 상처받은, 그럼에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못하는 그들의 연민과 사랑을 통해 결국 사람을 살게하는 본질에 대해 따뜻하게 그리고 있어. 연애 관계의 사랑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류애적인 사랑 말이야.
|
|
|
#21세기의 전통설화
지금까지의 소개만 보면 너무 진지할 것 같지? 하지만 [백로식당]의 가장 큰 매력은 귀여움이야. 많은 신들 중에서도 십이지신의 비중이 큰 터라 동물이 의인화되는 과정이 정말 귀여워. 내가 쥐를 정말 싫어하는데 쥐조차 귀여워보였으니 말 다했지? 각 신들의 특징을 현대사회에 맞게 적용시킨 것이 재미있는데, 예를 들어 쥐의 신은 어디에든 존재하며 소식을 빠르게 듣고 전하는 특성 때문에 대가족으로 묘사된다거나, 정육점을 운영하는 소의 신 도우(...), 사지말고 입양하세요 티셔츠를 입고 있는 개의 신 견우, 운수회사를 운영하는 말의 신 마오, 이밖에도 별거 중인 견우와 직녀랄지, 상조회사를 운영중인 염라대왕과 저승사자들, 산부인과 의사, 소아과 의사, 유치원 원장인 삼신들 등 설화 속 주인공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캐릭터가 매력적이야. 특히 전통적인 성 역할을 깨부수는 설정들도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만드는 데에 한 몫 한 것 같아. 대표적으로 십이지신 중 가장 힘이 센 호랑이신 인호는 여자이고, 예쁘고 귀여운 동물 토끼신 묘월은 남자로 그려져. 바리공주의 아들 칠원성군의 탄생설화도 여성 희생에 기반한 이야기인데 보기 좋기 뒤틀어버린다든가 역사의 부조리를 흔드는 대담한 방식의 전개가 맘에 들어. 왜 우리는 쏟아지는 콘텐츠들 속에서 자꾸만 과거의 것을 궁금해하는 걸까? 당시의 편견을 과감하게 뒤집으면서도 주변 모든 존재를 귀히 여겼던 과거의 정서는 고스란히 담아놓은 이 웹툰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소중한 감정을 되살려주고 있어.
|
|
|
#모든 믿음은 내뱉는 말에서 시작된다
단 한 사람만 믿어줘도 신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 믿음으로부터 태어난 존재이니까. 그들의 존재를 담는 그릇은 신체이기도 하고 오래된 물건이기도 하고, 자연의 일부이기도 해. 인간의 눈에 자주 보여야 더 쉽게 믿을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 마치 달처럼. 형태가 무엇이든 믿음이란 대상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어. 그래서 이 이야기는 신에 의존하는 믿음보다 믿음으로써 그것이 현실이 되는 힘에 대해 말하는 듯 해. 믿음은 신에게 향하지만 나에게도 향할 수 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향할 수 있지. “미래는 알 수 없지. 하지만 백로야 너는 말에는 힘이 있다는 걸 믿니?”, “네. 모든 믿음엔 신이 있고, 그 믿음은 입 밖으로 내밷는 말에서부터 시작되니까요”, “그렇다면 백로야 네가 원하는 일은 다 이루어질거란다”라는 대사를 읽으며 울컥했어. 그러니 우리도 스스로를, 내 세계를 신처럼 믿어주고 신이 인간을 사랑하듯 사랑해보면 어떨까. 영화 <코코>에서도 죽은 사람들의 제사를 계속 지내야만 저승에서 영혼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잖아. 존재를 기억하고 믿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 가끔 이 세상에서 혼자인 것만 같을 때, 지금 내가 사라져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을 때 내가 널 기억하고 있다고. 그러니 내가 기억하는 한 너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이걸 보고나니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이 생기는 듯 해. 세상에 환멸이 나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면 행복한 음식 하나를 떠올리면 좋겠어. [백로식당]을 보고 지금 집에 이사온지 10개월만에 라면, 파스타, 볶음밥 말고 제대로 된 요리를 했어. 우리집의 집밥이라 하면(본가말고 나 혼자 살지만 우리집) 카레인 것 같거든. 주말에 카레를 해먹었어. 이렇게 정성스럽게 밥을 챙겨서 나를 먹이는 것이 나를 가장 소중히 대해주는 행위같아. 신에게도 가장 먼저 하는 것이 공양이니까.
|
|
|
#관람포인트01
2023 오늘의 우리만화상 후보에 올랐는데 아쉽게 수상은 하지 못했더라고. 이렇게 완벽한 웹툰을 사람들이 많이 알아주면 좋겠어. 단행본 소식도 없어서 너무 아쉬워. 다들 어서 정주행한 후 하트 많이 눌러줘! 꼭 책으로 소장하고 싶거든.
|
|
|
#관람포인트02
난 오컬트를 좋아해서 무속신앙이나 전통설화 관련한 이야기는 늘 호기심이 생겨. 한참 비슷한 소재의 웹툰을 읽었었는데 그중 몇 개 추천해볼게. 카카오웹툰 [신의 태궁]과 네이버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야. [신의 태궁]은 신의 아이를 낳고 지상에 내려보내는 태궁과 태궁을 사랑한 도깨비의 이야기인데 이미 완결이 되어서 아쉽지만 유료관람밖에 안돼. 하지만 처연한 사랑이야기 좋아해? 그럼 무조건 봐야해. 10화까지는 무료이니 한번 읽어봐! 2022년 올해의 우리만화상 수상작이야.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부모님을 일찍 여읜 소녀 미래가 저주받은 섬의 비밀과 위기를 풀어나가는 대서사시인데 2022년 부천만화대상 대상 수상작이야. CJ에서 영상화도 기획중이라고 하니 미리 봐두면 좋겠지?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