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홀리데이 시즌인게 제법 실감 나. 이곳저곳 트리 장식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캐롤 좋아해? 난 신나는 노래는 좋아하지만 밝은 노래는 좋아하지 않아서(이 미묘한 차이 공감될 지 모르겠네) 대충 장조 노래 말고 단조 노래 좋아한다고 말하곤 하거든. 그래서 당연히 캐롤을 즐겨듣는 편은 아니야. 그래도 유일하게 듣는 캐롤이 있다면 바로 그 유명한 빈스 괴랄디 트리오의 ‘A Charlie Brown Christmas’ 앨범이야. 인기만큼이나 예쁜 디자인의 LP 종류도 굉장히 많아서 선물로도 추천해. 나도 몇 년 전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 적이 있는데 배송만 거의 한 달이 걸렸어.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주문하도록 해! 여하튼 어제 아침 눈 뜨자마자 잠결에 갑자기 이 앨범이 듣고 싶더라고. 이 앨범을 들으면 푸근한 실내 공기와 온도차로 인한 창문의 수증기, 사람들이 모여 식사하는 복닥거림같은 따뜻함이 떠올라서 기분이 좋아져. 음악과 함께 뜨거운 뱅쇼와 군밤을 먹어도 좋겠어. 도 연말이 되면 생각나는 음악이나 영화가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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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요약
레이지 카우 소사이어티를 만들 때 생각했던 페르소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레이지 카우’가 되길 바라는, 즐겁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다 소비한 ‘골든 카우’였어. 당시 난 퇴사 직후 너무 피폐해진 상태였거든. 우울로 인한 무기력과 회피에서 비롯된 게으름이 집에서 빈둥대거나 느릿한 시간을 좋아하는 주체적 게으름으로 변화하길 바랐던 거야. 그래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주문처럼 외치지만 그 균형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아서 언제나 아픈 마음을 보듬는 이야기에 끌리는 편이야. 그런 의미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평소 한드를 잘 안보는 나조차도 궁금해지는 소재였어. 이 드라마는 대학병원 내과 3년차 간호사 정다은(박보영)이 정신건강의학과로 전과한 후의 적응기를 표방하는데 때문에 외부인에서 내부인으로 시선의 이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이는 시청자들이 정신건강의학과의 질병과 환자들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과 동일시되고 있어. 무엇보다 ‘정신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음을 가스라이팅, 보이스피싱, 워킹맘, 공시생, 자살생존자 등 구체적 사회적 이슈들과 연결지어 보편적 공감성을 획득해내. 아쉬운 점도 꽤 있긴 했지만 함께 살아가는 모두에 대한 연민이 커지게 되어 공감하는 만큼 나도 위로 받을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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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경계인
이 드라마가 호평받는 이유는 보통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나와 구분되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겪었을 거라 예상하는데, 정신병동에 입원한 환자와 이들을 치료하는 의료진의 경계마저도 의도적으로 부숨으로써 우리 모두를 정상과 비정상이 아닌 경계인으로 그려내기 때문일거야. 우리는 누구도 날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외로움을 느끼잖아. 나약하다거나, 노력해서 이겨낼 수 있다는 프레임으로 2차 가해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내가 병원을 다닐만큼은 아니지 않나? 작은 일에 유난 떨고 있나?’라고 스스로를 다그치게 될 때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고 ‘나 같은 사람들이 또 있었구나, 나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구나’를 느낄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외로움을 덜어주는 드라마라고 생각해. 양극성 장애(조울증), 공황장애, 우울증, 경계성 인격장애, 경계선 지능, 조현병, 망상장애 등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다루고 있는 정신질환 중 잘 알려진 질환은 사회적 인식과 실제의 간극을 좁히기 위하여, 낯선 질환은 이로 인한 복지 사각지대를 알리기 위하여 다룬 것 같아. 특히 초반 환각을 보는 듯한 조증 상태와 물이 차오르는 공황장애에 대한 묘사는 실제 해당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냈다는 평을 얻고 있어. 다은이 처음 정신병동으로 출근한 날 수간호사(이정은)는 이런 말을 해. “여기는 커튼도 없어. 그래서 다른 병동보다는 아침이 제일 빨리 와” 아무리 어두워도 해는 결국 뜬다는 말을 들으면 인간 꽈배기인 나는 ‘나의 밤은 너무 길어서 아침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죽어버리면 어떡할건데?’라는 생각을 먼저 하지만, 그럼에도 아침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는 이 드라마의 따뜻함이 좋아서 그 말을 믿어보고 싶어졌어. 착한 드라마가 필요한 이유를 실감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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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판타지 드라마
젊은 세대들의 좋은 어른에 대한 갈증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고 느껴져.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미생]처럼 현실에 드문 좋은 어른이 포진해있다는 점에서 판타지 드라마이기도 해. 일을 하며 자신을 발견해가는 사회 초년생과 그들을 보듬는 선배들의 유대관계는 정신건강의학과라는 일의 특수성을 떠나 대중적으로 소구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해. 2020년대에 접어든 후 ‘일’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다각도로 커졌던 적이 있을까?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지.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일을 하며 보내잖아.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직장 동료이고 말이야. 이런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일을 잘하기 위한 노력의 방향은 어디여야 하는지, 즐겁게 일하는 방법은 무엇일지, 결국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롤모델-좋은 어른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식으로 해소하고 있어. 그렇기에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가상의 롤모델을 드라마에서 발견하고 대리만족하며 위로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거야. 수습 안되는 실수를 한 날 함께 야근을 해주는 동료,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할 때 용기를 주는 상사의 이야기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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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까지만 보세요
하지만 난 과감히 6화까지만 보면 된다고 말하고 싶어. 6화까지 쌓아올린 섬세함과 사려깊은 대본이 꿈같았을 정도로 7화부터 놀라운 클리셰 드라마가 되어가거든. 소재가 이미 특수하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익숙한 플롯으로 풀어내길 선택한 것 같지만 전반부에서 보여줬던 이야기의 밀도 대비 후반부에선 공백이 많이 생기더라고. 스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어 안타깝네. 가볍게 말해보자면 정신병동에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일이 되었을 때 그 괴리를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후반부를 채우는데, 나는 자기부정의 과정이 의도에 비해 너무 길어서 힘들었어. 사회의 냉정한 시선을 담아내려 했던 듯 하지만 밸런스 조절의 실패였다고 봐. 게다가 흐뭇하게 볼 수 있었던 정도의 러브라인이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다소 나이브한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흘러가서 심각한 캐릭터 붕괴가 아닌가 할 정도였어. 이외에 마지막화에서 몇몇 인물들의 변화도 현실감이 떨어졌고. 그럼에도 이정도로 정신질환을 지닌 사람들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드라마는 없었기에 여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 다만 나는 공감이 너무 잘 되어서 감정적으로 좀 힘들긴 했어. 실제 트리거가 되어 괴롭다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그만큼 사례가 구체적이라는 반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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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1
정신건강의학과, 내과, 이비인후과 전문의 3명이 운영하는 유튜브 ‘닥터프렌즈’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오진승이 최근 ‘멘탈탄탄’이라는 유튜브를 개설했어. 여기에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회별 리뷰를 올리고 있는데 업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댓글을 다는 모습이 귀여워. 드라마 고증은 잘 되어있는지, 드라마에서 소개된 질환에 대한 자세한 설명 등을 들을 수 있어. 관심있는 사람들은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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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2
워낙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기도 했지만, 그중 인상적이었던 배우 장률(위)과 노재원(아래)을 언급 안할 수가 없어. 각각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황여환과 망상장애 환자인 김서완을 연기했어. 장률은 드라마 [몸값]에서 인상적이어서 기억을 하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이네임]에도 출연했고 차기작으로 티빙 오리지널 [춘화연애담] 촬영중이라고 해. 노재원은 [오징어게임2]에 출연한다고 하니 두 배우 모두 앞으로 한국영화,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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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3
드라마에서 우울증 환자에게 의사가 칭찬일기를 권하는 장면이 있어. 드라마에서 사용한 동일 디자인은 벌써 품절인 것 같아. 표지는 다르지만 같은 칭찬일기도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한번 써보는 게 어때? 나도 습관적으로 자학하는 사람이라 써볼까 했는데, 생각보다 실천이 쉽지 않아. 내가 말고 다른 사람이 매일 나를 한줄씩 칭찬해주는 일기를 써주면 좋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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