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뉴스레터 발송시스템 오류로 예정보다 한참 늦은 시간에 발송이 되었지 뭐야. 인스타그램에는 바로 공지를 올리긴 했는데 못본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 영문을 모르고 기다렸다면 미안해! 나의 의지가 아니었어 흑흑😭 혹시 지난주 메일을 아직 열어보지 않았다면 꼭 잊지말고 읽어줘! 그나저나 이번주 한파 잘 이겨내고 있어? 사실 나 오늘 추워서 연차 냈어. 이길 자신이 없다면 피하자는 마음이랄까. 겨울은 대체 얼마나 남은걸까 싶다가 어제 저녁 퇴근길에 하늘이 평소보다 늦게 어두워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시간도 어쨌든 흘러가고 있나봐. 봄이 올 때까지 다들 감기 조심해. 이때다 싶어 스며드는 마음의 한기도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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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
리키 저베이스 좋아해? 독설로 유명한 영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야. 게다가 미드 [오피스] 원작자이기도 해. 대중에게 유명한 건 스티브 카렐 주연의 드라마일텐데, 사실 원작은 영국에서 먼저 만들어졌어. 리키 저베이스는 영드 [오피스]의 감독, 각본, 주연으로, 이후 미드 [오피스] 전 시즌의 프로듀서로도 참여했어. 오늘은 리키 저베이스가 모든 시즌, 모든 회차의 프로듀싱, 감독, 각본, 주연을 맡은 작품을 가져왔어.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이야. 국내 제목은 원제인 ‘애프터 라이프’에 ‘앵그리맨’이 붙었는데 평소 리키 저베이스의 유머 스타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앵그리맨’이 누구인지 단번에 고개가 끄덕여질거야. 완전히 자신을 연기하는 듯한 이 드라마속 리키 저베이스는 아내 리사가 암으로 세상을 먼저 떠난 뒤 혼자 남겨진 토니로 등장해. 삶의 이유였던 아내가 사라진 후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토니는 어차피 최악은 경험했고, 더 최악이 되면 죽어버리면 그만이니 맘에 드는 것 하나 없는 세상 모든 것에 솔직해지기로 결심해. 상처받은 마음을 가시돋힌 말로 위장한 한 중년 남자의 끝은 어디일까. 리키 저베이스 표 매운맛 각본과 보잘 것 없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합쳐져 기묘한 블랙코미디가 탄생했어. 총 3시즌이고 시즌당 6편, 편당 약 30분 내외의 짧은 드라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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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들의 연대
처남이 운영하는 작은 지역 무가지 ‘탬버리 가제트’의 기자인 토니는 물론 대단한 직업의식이 있진 않아. 이곳에서의 가장 큰 이슈란 주로 지역 신문에 실리고 싶은 지역민들의 제보거든. 콧구멍으로 리코더를 부는 백수, 히틀러를 닮은 아기, 반려동물 똥 수거함을 우체통으로 착각한 사람, 자신을 소녀라고 믿는 중년 남자 등 시니컬한 토니에겐 더더욱 아무 의미 없는 사연들이지. 안그래도 살아야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사연으로 지역 신문에 얼굴을 내고 싶은 사람들을 취재하러 다니는 일은 환멸 그 자체야. 재미있는 건 제보한 지역민들의 들뜬 얼굴들이야. 토니는 대단치 않은 주변의 모두를, 심지어 자신까지 포함하여 한심하게 여기고 후려치기 일쑤이지만 사실 인생이란 대단치 않은 일상의 매일이니까 오히려 토니가 무시하는 지역민들의 제보는 일상에서 아주 작은 일로부터도 즐거움을 찾고 있는 건강한 삶의 역설처럼 보이기도 하거든. 이러한 시선은 [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을 보는 내내 느껴지는데 인간적으로 호감을 갖기 어려운, 종종 혐오감이 들거나 삶의 루저임이 분명한 온갖 종류의 아웃사이더들이 등장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절대 빌런으로 그려지는 정신과 의사를 제외하고 이 드라마는 함부로 루저의 삶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 걸 택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상태로 그저 흠이 있는 대부분의 삶이 어떻게든 이어지고, 그 흠끼리 서로를 보듬어주는 서툰 연대를 보여주면서 말이야. 변하지 않는 절대적 불행-아내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토니가 조금씩 삶에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곁에 있어주었던 흠을 가진 사람들 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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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된다
“늘 슬퍼요. 리사가 죽으면서 원래 제가 갖고 있던 모든 장점과 행복이 사라졌어요. 텅 빈 기분이에요. 사람들은 제가 멀쩡한 줄 알아요. 잘 지내다가 더러 짜증을 내고 어쩌다 지금 같은 줄 알지만 아니에요. 제 상태는 안좋지만 평범했을 때를 기억해서 그 흉내를 내고 있어요. 다시 평범해지고 싶지만 나약해요.”
[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은 때로 웃어도 되는 걸까, 아슬아슬할 정도로 수위 높은 대사들이 오가는데, 매 시즌 마지막 화에선 꼭 눈물이 나. 모든 외로움을 껴안겠다는 연민이 작정하고 담겨있어 종종 사람들이 실제로 일상 대화 중에 갑자기 이런 명언을 내뱉는게 자연스러운가? 싶게 작위적이기도 하지만 극적 허용으로 기꺼이 넘어가주고 싶은 마법같은 순간을 기가 막히게 잘 연출했더라고. 위 대사는 시즌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야. 시즌1의 토니는 죽겠다는 생각을 그만두고, 시즌2의 토니는 도움이 필요한 주변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옮기기 시작하고, 시즌3의 토니는 비로소 리사가 없는 삶에도 의미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아. 하지만 극적으로 행복해지진 않아서 현실적이야. 그리고 마지막까지 리사의 빈 자리는 무엇으로도 대체되지 않았어. 상실감은 얼마나 오랜 무력감을 동반하는지 깊은 통찰이 없다면 쓸 수 없는 대사라고 생각해. 그래서 토니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아침 저녁으로 리사가 생전에 남긴 영상편지를 보고, 반려견 브랜디와 매일 산책하고, 요양원에 들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만나고, 출근해서 바보같은 지역민들의 제보를 취재하고, 상실을 품은 채 그러나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 뿐이야. 평범한 일상을 흉내내다보면 일상은 평범함을 닮아가고 결국은 삶을 구원한다는 것이 와닿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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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 코미디언의 힐링물?
토니는 시즌3에서도 시즌1과 언뜻 크게 달라보이지 않아. 시즌3에서 한 직원이 자신의 형편을 자조하는 우울한 말을 연이어 내뱉자, 다른 사람이 “엄청 징징대네. 언제 끝나나 했어요”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어. 크게 웃었는데, 저 대사를 나도 토니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 시점에 토니의 놀라운 변화가 등장해. 여태 종교나 내세, 영혼의 존재, 운세 등을 절대 믿지 않았던 그는 그러한 믿음을 가진 자들을 논리로 반박하며 망신 주는걸 즐기는 것처럼 보였거든. 이러한 가치관은 동시에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은 바람과는 충돌해서 여전히 그녀가 옆에 있는 듯한 기분을 부정함으로서 슬픔을 회피하는 것 같기도 했어. 그런 그가 “리사에게 내세는 없다고 놀리지 말걸 그랬어요. (죽기 전)겁먹지 않았어야 할텐데” 라고 후회하는 말을 내뱉을 때, 같이 울어버렸어. 아무렇게나 내뱉는 괴팍한 욕쟁이 아저씨가 웃음과 눈물을 섞어 진심을 말하는 순간은 [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의 치트키와도 같아. 이 드라마는 이런 식이야. 잔잔과 블랙 코미디는 공존 가능한 단어일까? 하지만 웃으려고 봤다가 의외로 위로받을 수 있는 이상한 드라마인 것은 분명해. 토니를 비롯한 외로운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약하지 않다고 생각해. 조금씩 늦어지는 일몰 시간처럼 지금은 똑같아 보여도 어느 순간 달라져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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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1
회차가 더해갈수록 반려견 브랜디의 분량이 늘어나는 건 아주 바람직한 일이야. 늠름한 외모에 토니가 늘 귯걸~을 외쳐서 귀여웠어. 이 드라마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본명은 Anti. 2011년에 태어났대. 건강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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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2
오랜만에 사운드트랙을 찾아 들었던 작품이야! 제작연도에 비해 예전 곡들이 많아서 음악이 나올때마다 어? 아는 노랜데 뭐지? 하면서 더 반갑게 느껴지곤 했어. 각 시즌별로 사운드트랙을 모아둔 재생목록을 공유해줄게.
🎧시즌1 / 시즌2 / 시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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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3
리키 저베이스의 골든 글로브 시상식 사회도 매번 화제를 모으는데, 거침없는 입담으로 참석한 배우와 영화를 가차없이 놀리기 때문이야.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무슨 말이 나올지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배우들을 보는 재미도 있어. 수위가 정말 아슬아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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