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월의 마지막 날이야. 난 며칠 전 겨우 올해의 목표를 세웠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는 못정했어. 하지만 게으른 이들을 위해 3월이라는 두 번째 시작이 있잖아. 일단 그때까진 아직 새해가 아닌 것처럼 유예해볼까 해. 계획이란 참 귀찮지만 순간순간 하고 싶은 것들은 많아. 요새는 사실 영상보단 만화와 웹툰에 미쳐있어. 눕방일기에서 종종 다루긴 하지만 구독자들이 OTT 추천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빈도가 많지는 않아. 사실 눈치 보고 있는 거야😂 나에게 만족스러운 휴일의 이미지를 떠올리라면 주로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는 모습인데, 한편으론 만화방에서 반쯤 누워 라면을 먹으며 만화를 읽는 모습도 있어. 그러니 조만간 OTT 추천이 아니라도 반갑게 맞이해줄래? 그리고 레이지 카우를 위해 최근 재미있게 본 만화나 웹툰이 있다면 인스타그램으로 제보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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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름다운 것들
인생 정말 안풀린다 싶은 사람들 있어? 미안하지만 디즈니플러스 [작고 아름다운 것들]의 클레어(캐서린 한)만큼은 아닐거야. 50세의 생일이 한 달 여 남은 클레어는 남편과의 문제로 집에 들어갈 수 없어 직장인 요양원의 남는 침대에서 숙박을 해결하다 정직 당했고, 고등학생인 딸은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미워하고, 작가로서의 생명도 꺼져가는 중이야. 부부상담을 맡은 상담가는 묘하게 자신만 탓하는 것 같아.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할지, 완전히 망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인생 한복판의 클레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슈가에게’라는 익명의 고민상담 칼럼을 맡게 돼. 과연 내가 다른 사람 인생을 상담해줄 처지인가 싶지만 슈가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외면할 수가 없어. 그 간절함을 읽다보면 클레어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일까. 가난하지만 완전한 도피처이자 요새였던 엄마와 엄마의 집 안에서의 기억이 현재와 교차하며 아름답고 서정적인 슈가의 답신이 완성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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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파괴적인 슬픔
클레어의 기억을 지나다보면 나이와 상관없이 마무리짓지 못한 기억은 얼마나 오래 한 사람을 과거로부터 붙들어놓는지 생각해보게 돼. 대학생 때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엄마의 죽음으로부터 사실 클레어는 단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것 같아.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빠와 헤어지고 엄마와 남동생 루카스, 클레어 세 사람이 함께 살던 시절은 클레어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떠올리는 중요한 시기야. 무한한 사랑을 주었던 엄마가 중심을 지키던 시절이거든. 그 중심이 사라지자 어린 클레어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표출하는 방법으로 엄마의 부재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 자기 파괴적인 삶을 선택함으로써 증명하기를 택해. 그런 식으로 얻어낸 불행은 사랑의 증거일 수도 있었지만, 증거가 하나 둘, 셀 수 없이 늘어나면서 클레어 자신도 더이상 시작이 무엇이었고, 무엇이 목적이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게 되어 결과만이 남은 현재의 원인을 고스란히 자신을 충분히 살펴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떠넘기며 자기 연민에 빠져 버렸어. 부부상담에서조차 남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클레어는 동시에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가족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횟수가 늘어가고 커져가는 목소리만큼 대화는 불가능해졌지. 그런 클레어가 ‘슈가’의 이름으로 받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며 외면해왔던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떠올리게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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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하는 불행
고통에 의미를 찾는 행위는 이유가 없는 고통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인간만의 도피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럼에도 나의 불행은 타인의 불행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으로서 완전한 무의미만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봤어. 고통이 깊으면 깊을 수록 인간은 삶을 탐구하게 되잖아. 그 치열한 탐구는 나만의 인생이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확장하여 품기 때문이지. ‘슈가에게’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절박했을거야. 주변의 누구도 답을 주지 못했거나, 누구에게도 묻지 못한 채 마음 안에서 가장 커다랗게 존재감을 키워나간 단 하나의 생각이 떨쳐지지 않을 때 익명의 119 버튼을 눌렀던 것이 아닐까? 클레어는, 슈가는 감히 한 인간이 누군가의 인생에 답을 주지 못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야. 상담사조차 부부관계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걸. 대신 발신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진실된 태도로 공감과 용기를 전해. 그 과정은 클레어가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를 똑바로 곱씹는 과정이기도 해. 글쓰기는 자기 발견의 대표적인 방법이잖아. 에세이스트였던 클레어는 비로소 상담 편지라는 형식 안에서 삶과 불행에 대한 누구보다 깊은 탐구의 기억을 바탕으로 진정성있는 일기이자 에세이를 발행하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클레어가 자신의 이름을 숨긴 지금 작가로서 다시 살아갈 두 번째 기회로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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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는 삶
"모든 삶에는 자매선이 있어요. 당신 앞에 있는 건 선택의 갈림길과 어느쪽을 선택하든 무언가를 잃을 거란 사실이에요. 선택은 당신 몫이죠.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자매의 삶이 뭐였든 간에 중요했고, 아름다웠고, 우리게 아니란 거죠."
‘슈가에게’를 쓰며 일어난 가장 큰 클레어의 변화는 모든 현재는 본인이 선택한 결과라는 걸 깨달았다는 거야. 과장하면 삶은 끊임없이 선택하고 선택을 책임지며 흘러가는 것 아닐까. 클레어는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선택을 후회했고, 그 선택은 언제나 자신의 것이었고, 앞으로도 후회할 일이 많이 생겨날 거야. 하지만 ‘작고 아름다운 것들’의 기억이 삶을 지탱하게 한다는 걸 알았던 클레어의 엄마를 따라 클레어는 자신의 딸에게도 어떤 슬픔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작고 아름다운 것들’의 기억을 물려주고자 해. 그렇게 더이상 과거에서 후회만을 건져올리는 클레어가 아니라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는 엄마이자 작가 클레어로 성장하며 50살을 맞이해. 회당 약 30분 내외, 8회차의 짧은 시리즈인데 보는 내내 베갯잇을 적시며 오열했지 뭐야. 상실 이후의 삶이라는 점에서 지난 주 소개했던 [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작고 아름다운 것들]은 엄마와 딸의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여성서사라 비슷한 주제의 다른 이야기야. 완전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하기에 계속 살아가는 삶에 마음이 늘 움직이곤 해. 오열했다고는 했지만 신파는 전혀 아니고 유머러스한 순간들도 있어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니 너무 겁 먹을 필요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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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1
셰릴 스트레이트의 동명소설이 원작인데 안타깝게도 아직 국내 발간되지 않은 모양이야. 리즈 위더스푼 주연 영화 <와일드>의 원작 소설 작가이기도 해. [와일드] 역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에 가난과 아빠의 폭력, 유일한 의지가 되어준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 자기 파괴적인 삶을 벗어나려는 주인공 등 <작고 아름다운 것들>과 비슷한 설정들이 엿보여. 영화 <와일드>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데몰리션> 등 장 마크 발레 감독 작품으로 혹시 아직 못봤다면 꼭 보길 바라! [작고 아름다운 것들]과 같은 뿌리지만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지 함께 보면 흥미로울거야. 제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차오르는 건강하고 단단한 영화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 참고로 [작고 아름다운 것들]은 리즈 위더스푼의 제작사 헬로 선샤인에서 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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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2
마지막 화를 보고 당연히 시즌2가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애초에 리미티드 시리즈로 기획되었다고 해.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걸까? 확실한 해피엔딩을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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