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마지막 뉴스레터 번외편에서 이번 자이언티 앨범을 자주 듣고 있다고 말했었는데 기억해? 이후로 뒤늦게 자이언티에 빠져서 마지막 업로드가 22년 8월에 멈춰있는 그의 개인 유튜브 채널 ‘솔의눈’을 정주행하고 있어. 평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잘 하고 비전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탁월한 크리에이터로서의 면모에 반했달까. 청량한 투어스에 잠시 눈이 화사해졌지만 나이 차이가 너무 나서 죄책감에 깊이 파지는 못하고 닮고싶은 일잘러의 롤모델로서 자이언티를 디깅하는 요즘이야. 나도 주위에서 유난이라 하더라도 선택 하나하나를 타협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게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이상하게 자극을 받았어. 물론 다짐 다음날 바로 피곤하다…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가 됐지만. 지루한 에게도 지금 나에게 자이언티가 주는 영향만큼은 아니더라도 눕방일기가 5분 정도의 자이언티는 되면 좋겠어😘

다가오는 설 연휴, 혼자 집을 지킬 구독자들에게 티빙 오리지널 [LTNS]를 추천할게.(부모님과 보지 말라는 뜻) ‘프리티 빅브라더’라는 이름으로 의기투합한 <소공녀> 전고운 감독, <윤희에게> 임대형 감독의 농도짙은 블랙코미디 드라마야.(눕방일기에서 소개한 <윤희에게>도 참고해줘!) 누구보다 불 타오르는 사랑을 했던 연인 우진(이솜)과 사무엘(안재홍)이 7년 후 편안하지만 시들한 섹스리스 부부가 된 현재에서 이야기는 시작해.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인데 꼭 섹스를 해야 좋은 부부일까? 사실 그보단 당장 다음 달의 대출 이자가 더 큰 문제로 다가오는 두 사람이 성적 긴장감을 느끼기엔 현실의 무게가 너무 커. 우진은 지금처럼만 살면 열심히 일만하다가 죽을 때까지 아등바등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위기감에 미친 짓을 감행하기로 결심해. 그녀에겐 호텔리어로 일하며 모아온 수많은 블랙(불륜)리스트들이 있거든. 팔자에 없던 불륜 커플 공갈 협박단으로 변신한 우진과 사무엘. 떨어진 집 값, 딱 1억 5천을 모을 때까지만 위험천만한 투잡을 하기로 결심한 그들의 여정은 어떻게 마무리 될까. ‘내로남불’의 의미를 직접 확인해봐.

#성 담론을 정면돌파

[LTNS]는 우리나라에서 터부시되는 성 담론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도 수위 높은 표현이 주제의식과 연결되는 몇 안되는 작품으로서 의미 있다고 생각해. 편견일지 모르지만 국내에서 높은 수위의 베드신이나 노출을 내세운 영상 콘텐츠 중 그것이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적합한 수단으로 느껴진 적은 많지 않았어. 대부분 여성 배우의 노출장면이 짤로 도는 성적 소비에 그치곤 했던 것 같아. 성 담론을 억누르는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서 오히려 음지에서 이상 성범죄는 너무나 많이 발생하는 아이러니한 나라에서 [LTNS]는 19금에 기대하는 배우들의 나체 대신 현상 그 자체와 인과관계에 집중하길 택했는데, 그렇게 노골적이고 높은 수위의 대사로 채워진 장면들은 의외로 어떠한 노출 장면보다 더 파격적으로 다가와. 몇 번의 섹드립으로 발칙한 척하거나 배우의 나체를 성적 대상화하는 한국적 19금 콘텐츠의 나쁜 점을 답습하지 않고 실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사회 문제를 성이라는 키워드로 파고들어 심지어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로서 웃음까지 곁들인 한국판 <결혼 이야기>처럼 보여. 더불어 TV, 극장이라는 전통적 매체의 표현 한계를 OTT라는 플랫폼을 활용해 뛰어넘고 이 안에서만 가능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던 좋은 협업 사례라고 봐. 

#내가 블랙코미디의 주인공이라면?

단순 불륜 커플을 응징하는 코미디라고 생각했던 이 드라마는 예상 외로 수많은 사회 이슈들을 촘촘히 이어놓았어. <소공녀>에서 집 값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포기한 ‘미소’와 추운 집에서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봄으로 미루던 ‘한솔’은 영끌해서 집을 겨우 마련했더니 떨어지는 집값과 치솟는 금리에 고통받는 부부 우진과 사무엘이 된 것 처럼 보여. 불륜 커플을 협박해서 마련한 돈이 두 사람의 맹목적인 사치가 아니라 칠순을 맞은 아버지, 피아노에 재능이 있지만 돈이 없어 교육을 포기할뻔한 조카 등 가족에게로 향하는 모습은 미치도록 돈을 쫓는 현대인들의 애잔한 얼굴을 비추고 있어. 불륜 커플에게도 나름의 사연은 있는데, 그것이 그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한다기보다 인간의 복잡한 입체성과 불륜에 이유가 생기는 근본적인 사회 문화를 보여주는 것 같아. 우진과 사무엘의 투잡이 겉잡을 수 없는 파국을 맞으며 격정적으로 흘러가는 드라마의 끝에서 이를 지켜보는 우리도 길을 잃는 까닭은 대상과 나를 뚜렷하게 구분지을 수 있었던 ‘불륜’ 드라마에서 더이상 나만 발을 뺄 수 없게 되기 때문이야. 인터뷰 중 임대형 감독은 “우리가 타인의 삶을 볼 때는 거리를 두고 관찰하니까 웃으며 보기도 하지만 그게 내 얘기가 됐을 때는 참담해진다”, “그게 블랙코미디의 묘미 같다”고 말했어. 문제를 대상화하여 바라보던 객체가 주체로 전복이 일어나는 구조를 기가 막히게 설계했더라고. 

#한국판 <결혼 이야기>

앞서 언급한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는 사실상 이혼의 과정을 지켜보는 영화인데 제목이 ‘이혼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 이야기’라는 것에 주목해야 해. 부부가 분열하는 결혼의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결혼을 시작하던 처음의 마음과 곪아버린 관계의 원인을 투명하게 직시하며 결혼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LTNS]가 떠올랐어. 결혼으로 압축한 시절에 삶의 본질을 담으려 했다는 점도. 우진과 사무엘이 불륜 커플을 추적하며 얻은 것은 돈 뿐 아니라 둘 만의 시간도 있어. 분명 존재하는 서로의 틈을 익숙한 안정감이라는 이름으로 덮고 있던 두 사람은 더 이상 이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좋든 나쁘든 두 사람의 내밀한 감정과 기억을 파헤치게 돼. 섹스리스로 시작해서 지독한 한국에서의 결혼 이야기로 끝나는 [LTNS]의 6화엔 <결혼 이야기> 명장면인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아담 드라이버)의 말싸움만큼이나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해. 명절에 어쩌면 가장 어울리는 드라마가 아닐까?

#관람포인트01

[LTNS]는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 배우 안재홍이 연출한 단편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에 이어 배우 이솜과 안재홍이 무려 세 번째 커플로 출연한 드라마야! 몇 년 간 작품을 통해 서사가 쌓인 두 배우의 관계성 덕인지 드라마 속 우진과 사무엘의 오랜 시간이 쉽게 납득이 됐던 것 같아.

#관람포인트02

배우 이학주, 김새벽, 정진영, 양말복, 류덕환 등 각 회차별로 반가운 얼굴들이 대거 등장해. 드라마 특성상 출연 배우 모두 기존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역할이었는데 누구도 안어울리는 사람이 없어서 깔깔대며 볼 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