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기 하는 버릇 고치는 법 아는 사람? 예전부터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은 열심히 지키는데(예를 들어 대학시절 팀플이나 회사일) 내가 혼자 피해입는 일은(예를 들어 혼자 시험치는 수업 학점이나 뉴스레터 마감) 자꾸만 외면하게 되더라고. 나는 회피형일까 아닐까? 이런 성격 때문에 레이지 카우 소사이어티의 발등에 불붙은 캐릭터가 나왔기는 하지만 말이야. 매번 발행 전날 저녁 퇴근하고 마감을 하는 나에게 미리미리 할 수 없냐고 다그치게 돼😭 어차피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못고칠 것 같으니 이제 이런 나를 받아들이고 싶은데 왜 쉽지 않을까! 혹시 도 지금 해야할 일 미루고 쇼츠 지옥에 빠져있어? 반갑다 친구야..!
|
|
|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스타 이즈 본>으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했던 브래들리 쿠퍼의 두 번째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여우주연상, 각본상을 비롯 총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기염을 토했어. 클래식 분야에서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미국의 첫 스타 지휘자이자 작곡가, 연주자였던 ‘레너드 번스타인’(브래들리 쿠퍼)과 동시에 브로드웨이 스타배우였던 아내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 콘 번스타인’(캐리 멀리건)의 결혼 일대를 조명하는 영화야. 클래식 팬들이 기대하는 거장의 주요 음악적 성취는 거의 등장하지 않아. 하나에 쏟기도 어려운 정도의 열기를 영화음악, 뮤지컬, 클래식 등 다방면에 제각각 쏟아야만 했던 숙명의 한 예술가는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남성에 끌렸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모든 사랑을 원했어. 타오르는 사랑 다음 단계의 사랑은 무엇일까? 갑자기 <라라랜드> 세바스찬과 미아의 결혼 이후의 삶이 궁금해졌어.
|
|
|
#사랑의 블랙홀
브래들리 쿠퍼가 두 번째로 선택한 인물이 어째서 레너드 번스타인이어야 했는가 생각할 때 자연스레 <스타 이즈 본>의 잭슨이 떠올라. 잭슨이 실존인물은 아니야. 그러나 그의 감독 데뷔 이전 1937년의 동명영화 원작이 1954년, 1976년 이미 두번이나 리메이크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존 인물만큼이나 긴 시간 살아있었던 사람처럼 보여. 재능만큼 끈질기게 따라붙는 어두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파멸한 어느 예술가로 말이지. 브래들리 쿠퍼가 매료된 두 명의 예술가, 공교롭게도 서로 다른 결말을 향한 두 명의 음악가에게선 본인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었던 강렬한 본능이 엿보여. 빛나는 재능이 일정 정도 동반하는 제멋대로의 이기심은 종종 예측 불가능하여 손에 잡히지 않고 영원히 갈증을 느끼게하는 존재로 만드는 힘이 있어. 사랑에 빠졌을 땐 그래서 현혹됐으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관계가 깊어질 수록 불안정함은 사랑의 생기를 빠르게 먹어치우는 블랙홀이 돼. 블랙홀에 잠식된 건 잭슨이었고, 블랙홀보다 빠른 속도로 커다란 구멍을 타인의 사랑으로 맹렬하게 채운 건 레너드 번스타인인 셈이지.
|
|
|
#예술가를 사랑하는 일
저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불행해질 거라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 적 있어?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을 다 보고 난 후 떠오르는 건 오히려 세 번의 펠리시아야. 막 사랑에 빠졌을 때, 레너드 번스타인이 역작 ‘미사’를 완성한 순간 귀를 막고 수영장에 뛰어들던 때, 말러 교향곡을 지휘하고 난 후 그와 예술적 재능에 다시 사랑에 빠진 때. “내가 오만했지. 그 정도 사랑에 만족할 줄 알았거든”이라 말하는 펠리시아에게 당신의 잘못은 단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싶다가도, 굳이 따지자면 그런 사람인줄 알면서 사랑했고 사랑을 멈추지 않은 펠리시아의 선택이 사실 제일 잘못한거여서, 도대체 속인 사람이 누구냐며 씁쓸하게 웃는 그녀에게 별 도리 없이 대답하길 포기했어. 성적 지향의 혼돈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처음 그대로였을까 생각해봤는데 그런 질문이 무의미해지는 이유는 결혼의 역사에서 이들에 비견될만한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야. 상대의 외도를 알면서도 참고 살더라라는 처연한 어느 도시 괴담에 맘껏 울지도 웃지도 못하겠는 나는 여러 이야기의 커플들을 떠올리게 됐어.
|
|
|
#블루의 영화
처음엔 <라라랜드>의 세바스찬과 미아가 결혼한 미래같았어. 스타가 되기 전 만난 음악과 연기를 사랑하는 두 남녀. 그들이 헤어지지 않았고, 결혼했고, 충분이 나이가 들었다면 이들조차도 사랑 대신 분노를 뱉었을까?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처럼 지루한 표정을 짓고 새로운 사람에 설렜을까? 자이언티 좋아한다고 두 번이나 말하고 세 번째 말하려는 참이라 민망한데 최근 ‘해피엔딩’이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하거든.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우린 빈 종이 맨 앞줄에 서있지’라는 가사가 있어.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시작도 끝도 가늠없이 존재하는데 어디에서 멈춰야 해피엔딩일까, 내가 멈출 수 있는 해피엔딩이 있을까 생각하곤 해. <라라랜드>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연인이 가장 아름다운 때 헤어져서 어쩌면 그들 최선의 해피엔딩처럼 보이기 때문이겠지. 서로의 바닥을 보기 전 헤어지는 것이 해피엔딩이라면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에서 레니와 펠리시아의 결말은 해피엔딩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시기를 수 없이 지나쳐서 찾아온 낡고 지친 엔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사랑은 부부 관계를 표현하기에 좁고 편협한 개념이거나, 혹은 이제 서른 중반을 지나는 나의 사랑에 대한 편협한 해석일 거라고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어. 대신 나에게 남은 건 하늘색의 이미지야. 흑백에서 칼라로 변하는 첫 장면에서 남편이 나이어린 남성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 짙은 하늘색 실크 원피스의 펠리시아, 분노의 폭언을 쏟아내던 청녹색 원피스의 펠리시아, 레너드 번스타인의 무대에 다시 사랑을 전하는 얇은 하늘색 시스루 원피스의 펠리시아, 그리고 펠리시아가 세상을 떠난 순간 하늘색 셔츠의 레너드 번스타인까지. 우울을 뜻하는 blue는 <그랑블루>의 바다,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의 첫사랑, <블루 자이언트>의 재즈를 지나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에선 한 세월의 사랑이 되었어.
|
|
|
#관람포인트01
브래들리 쿠퍼가 약 6분간 지휘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1976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말러 교향곡이야. 이 장면을 위해 무려 6년 간 지휘를 연습했다고 해. 클래식 잘 모르는 나도 엄청나다는건 알겠어.
|
|
|
#관람포인트02
<스포트라이트>로 각본상을 수상하고 <더 포스트><퍼스트 맨> 등 실존 인물 기반의 뛰어난 각본으로 알려진 조쉬 싱어가 이번 영화에도 참여했어.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을 결정한 순간부터 바로 그에게 작업을 의뢰했다고 해. 이번 아카데미 각본상도 과연 수상할 수 있을까?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