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떠오른 영화의 제목이 생각이 안나서 출연한 배우를 말하려는데 배우 이름도 생각이 안나고 연출한 감독도 얼굴만 아른거리는거야. 그래서 배우와 감독의 전작으로 검색해보려는데 그마저 제목 기억이 안나서 머리를 쥐어뜯는 거 혹시 나만 그래? 얼마 전 친구들과 남원에 새로 생긴 지인의 막걸리집으로 여행을 다녀왔거든. 가게 이름은 ‘비틀즈’고 노래를 직접 고를 수 있어서 전주가 나오자마자 ‘니 좀 하네’라는 소리 들을 수 있는 선곡을 위해 무언의 경쟁을 하던 중 Caetano veloso의 So In Love가 흘러나왔고, 난 앨범 표지를 보며 오스카 아이작과 닮지 않았냐는 말을 뱉고 말았어. ‘그 사람 이름 뭐야’의 늪에 빠지게 된 시작이었어. 친구가 물었어. “오스카 아이작 악역으로 나온 영화 뭐야.” “<엑스맨>?” “아니 그 있잖아..”하다가 검색해보니 <엑스마키나>였어. 그러자 친구가 또 물었어. “그.. 악역으로 유명한 사람 있잖아, 그 사람 이름 뭐야. <녹터널 애니멀스> 나온..” 결국 또 검색했는데 제이크 질렌할이었어. 그걸 들은 다른 친구가 말했어. “그.. 있잖아 제이크 질렌할 상실 영화 그거 이름 뭐야…” “<데몰리션>?” “아 맞아. 그 감독 죽었잖아. 감독 이름 뭐야…” 하고 역시나 생각나지 않아 검색했는데 장 마크 발레 감독이었고, “장 마크 발레가 죽었다고?” 하고 놀란 나에게 친구가 “<카페 드 플로르> 봤어? 진짜 좋은데 다음 뉴스레터에 써주라.”라고 한 것이 이번주 뉴스레터의 발단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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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드 플로르
<카페 드 플로르>는 1960년의 파리와 2011년의 몬트리올을 살고 있는 다섯 명의 얽힌 운명과 사랑에 관한 영화야. 과거와 현재의 연관성이 도통 보이지 않는 이들 사이 약 50년의 시간을 연결하는 건 ‘Café De Flore’라는 노래야. 시대도 장소도 나이도 환경도 완전히 다른, 과거의 로랑과 현재의 앙투안은 본능적으로 같은 노래에 끌리고 있어. 이유없이 유난히 계속 듣게 되는 노래가 있잖아. <카페 드 플로르>는 당신이 유달리 좋아하는 그 노래에도 이유가 있다고 말하고 있어. 프랑스 예술가들의 성지였던 카페 ‘카페 드 플로르’와 같은 제목 때문에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과거의 예술세계로 타임워프 하는 장르로 오해하지는 말아줘.(참고로 <카페 드 플로르>는 <미드나잇 인 파리>보다 2주 늦게 개봉했었어.tmi) 혹시 운명을 믿어? 이번 생에 운명이었던 누군가와의 시간이 정해진만큼 채워지지 않았다면 남은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채워야 할까? 넘친 시간은 어떻게 될까.
📺볼 수 있는 곳: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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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수 밖에 없는 한 남자와 행복할 수 없는 한 아이
영화는 처음 두 시대의 두 남성에 대해 이렇게 소개해. 2011년의 앙투안(케빈 파랑)은 “이 영화는 행복할 수 밖에 없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라고, 1960년의 로랑(마린 게리어)은 “여기 행복할래야 행복할 수 없는 한 아이가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다행히도 그에겐 자클린(바네사 파라디)이 있다”라고. 소개와 달리 앙투안은 영화 시작부터 자신이 모든 것을 망친 것 같다는 죄책감을 상담사에게 터놓고 있어. 학창시절부터 20년 간 만난 아내 카롤은 분명 의심할 수 없는 운명의 상대였다고 말이지. 갑자기 나타난 로즈를 발견하기 전까진. 한편 자신이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해서인지 언제나 웃고 있는 소년 로랑은 엄마 자클린과 단 둘이서 완벽한 세계를 이루고 있어. 그의 반에 전학 온 같은 다운증후군 소녀 베로를 만나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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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바라보는 윤회의 낭만
한자 사람 인(人)은 서로가 서로를 기대고 있는 모양이잖아. 태어난 이상 누구도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조상의 오랜 가르침인거지. 예전부터 현생의 부부는 전생에 부모자식 관계였다는 말이 참 재미있었거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여러 겹에 걸친 인연이라고 믿었던 인간의 마음이 애틋해. 그런 점에서 <카페 드 플로르>는 12년 후 등장한 <패스트 라이브즈>와 함께 서양에서 윤회사상을 받아들이는 낭만적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야. 물론 사랑 이야기가 말하는 전생의 인연이란 이미 동양 문화권에서는 통속적이라 ‘오리엔탈리즘 아니야?’라고 팔짱을 끼고 싶을 수도 있지만 “그토록 사랑한 사람을 잃고 나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는 것 말고는 살 길이 없다”고 말하는 카롤의 대사에서 큰 상실을 경험한 누구나 믿고 싶을 수 밖에 없는, 절박한 희망으로서 윤회를 바라보게 돼. 생사의 반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비논리적인, 그래서 인간적인, 철학이기 전에 차라리 염원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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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들의 애착관계
장 마크 발레 감독은 다양한 여성 서사를 그리기로도 유명한데, 그래서일지 나는 <카페 드 플로르>에서 엄마와 아들의 관계 묘사가 흥미로웠어. 로랑의 인생에는 엄마 자클린 밖에 없었고, 자클린의 인생에도 아들 로랑 밖에 없었다가 로랑이 엄마만큼 사랑한다고 말하는 또래의 여자친구 베로에게 강한 애정을 쏟자 자클린은 자신의 세계에서 독립해가는 아들에게 강한 집착을 보여. 처음부터 자클린이 로랑에게 쏟는 무한한 사랑은 엄마가 아들을 대한다기 보다 연인을 대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거든. 현대로 돌아와서도 앙투안이 완전한 가족이었던 아내 카롤을 떠나 새로운 운명의 상대인 로즈를 만나는 과정에서의 죄책감과 본능적 끌림도 자클린과 로랑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 때문에 결말은 한국 정서상 불편한 사람들도 꽤 있을텐데 보여지는 장면 그대로라기보다 엄마와 아들의 애착관계의 변화, 유아에서 성인으로 독립의 과정이라고 본다면 이해해볼 만 하지 않을까 싶어. 분명한 메세지로 기억되는 영화가 있는 반면 <카페 드 플로르>는 이미지의 영화야. 오히려 갑자기 이야기를 설명해가는 후반부보다 조금은 모호한 채로 떠다니는 초중반부가 더 마음에 들었거든. 그건 아마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의 정서 때문일거야. 앙투안이 ‘Café De Flore’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알 수 없는 채 즐겨 들었던 것처럼 나 역시 때때로 내러티브보다는 <카페 드 플로르>의 사운드트랙이 흘러나오던 장면의 감정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게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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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1
사운드 트랙 'café de flore'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모티브로 활용되는데, 1960년 자클린이 LP로 이 노래를 듣곤 해서 오래된 곡인 줄 알았거든. 찾아보니 2000년에 처음 발매되었더라고. 워낙 여러 버전이 있어서 다 들어봐도 정확히 영화에서 사용한 버전을 찾기가 어려워. 그래서 박자가 가장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버전으로 가져왔어. 이 곡을 듣는 앙투안은 이렇게 설명해. “명곡이라면 좋았을 텐데 아니, 듣기 좋은 곡이라는게 낫겠네요. 지극히 평범하지만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그 순간을 붙잡고 싶게 하는 곡. 듣고 있으면 삶이 아름답게 보일 수밖에 없는 그런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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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2
<카페 드 플로르>는 오랜만에 영화가 끝나자마자 사운드트랙을 찾게 되는 작품이었어. 음악이 삽입되는 모든 장면마다 탄식했거든. 특히 시규어 로스, 핑크 플로이드, 더 큐어의 음악이 자주 등장해. 13년이 지나 다시보는 2011년의 현재는 아이팟과 유선 헤드셋으로 음악을 듣고, 시규어 로스가 흘러나와 그 자체로 2011년의 노스탤지어를 공유하는 기분이야. 이 노래를 자주 들었던 그 시절의 기억이 함께 떠오르더라고. DJ인 앙투안은 딸에게 “네가 음악을 좋아하니까 아빠는 기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감독의 음악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는 부분이야. 전작 <크.레.이.지>는 무려 데이빗 보위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고.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도 핑크 플로이드, 더 큐어를 비롯 엘비스 프레슬리, 데이빗 보위, 팻시 클라인 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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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3
감독의 마지막 영화는 아쉽게도 <데몰리션>(2015)인데, 이후 HBO에서 [빅 리틀 라이즈][몸을 긋는 소녀] 시리즈 제작을 이어갔어. 특히 [빅 리틀 라이즈]로 에미상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어! 2019년 시즌2 방영 후 작년 말 무려 4년 만에 시즌3 제작 소식이 퍼졌어. 나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호평이 자자한 작품이라 언젠가 꼭 시도해보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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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답장왔어요📮
From.익명
멍멍 ... 읽어볼까? 고민하다 소개글을 보고 저도 장바구니에 담아보았어요. 좋은 컨텐츠 소개 감사합니다.
📝레이지 카우의 답장
[철수 이야기] 읽기 전 눈물 닦을 휴지 준비 필수라멍🐶 장바구니까지 담아주시다니 너무 뿌듯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거예요. 다 읽은 후기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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