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부터 수요일 휴일만 오늘로 세 번째인거 알아? 왜 내가 기억하냐면 사실 수요일의 휴일이 달갑지 않았거든(비장) 출근하며 뉴스레터를 많이 보는 편인지 휴일의 수요일엔 다들 날 잊은 모양이야😭 나 빼고 뭐해..? 나만 집인걸까..? 요즘 이곳저곳에서 원영적 사고로 살아보려는 마음과 타고난 희진적 사고가 충돌하는 모양인데 나는 둘 다 안되는 준혁적 사고라고 말하고 싶어. 예전에 유퀴즈에서 배우 이준혁이 자신을 ‘일비일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서 박장대소한 적이 있거든😂 한 사람이 메일을 열지 않는 것만으로도 일주일간 슬퍼하는 소…를 위해 다음날 출근해서라도 읽어주지 않겠어? 너무 구차해?👀 그렇다면 최후의 수단은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리플리_더 시리즈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를 드라마화한 [리플리: 더 시리즈]에 대해 어떠한 정보 없이 론칭 소식만을 들었을 때 처음 떠오른 생각은 ‘또?’였어. 이미 소설을 훌륭하게 영화화한 알랭 들롱의 <태양은 가득히>(1960), 맷 데이먼, 주드 로의 <리플리>(1999)가 있는데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8편에 걸쳐서 볼 만한 매력이 있을지 의문이었던 거지. 그런데 전 편에 걸쳐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심장이 조이는 긴장감을 유지하는 놀라운 완성도에 거듭 놀랐어. 주요 전개는 동일해. 사기로 푼돈을 벌며 살아가는 ‘리플리’가 선박 제조업 재벌로부터 이탈리아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면 거액의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 이를 수락하고 이탈리아로 떠난 리플리는 디키와 가까워지는데 성공하지만 곧 그를 살해한 뒤 자신이 디키로 살아가게 돼. 소설은 읽지 않아 찾아보니 이번 드라마가 가장 원작과 가깝다고 해. 리플리가 <태양은 가득히>에선 (알랭 들롱이 연기했으니 당연한걸까) 외적으로 가장 관능적인데다가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이었다면 <리플리>에서는 자신의 거짓말에 빠져 파멸하는 다소 유약한 인물이야. [리플리: 더 시리즈]에선 어떨까.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이성애든 <리플리>에서의 동성애든 이 버전의 리플리는 어떠한 성적 끌림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어쩌면 그건 너무나 인간적인 감정이기에, 감정이 모두 거세된 듯 차갑고 차분한 인물로 그려졌어. [셜록] 시리즈에서 ‘존 모리아티’ 역으로 유명한 앤드류 스콧이 새로운 리플리를 연기해.
1화를 시작한지 5분 만에 어느 장면에서 멈춰도 필름 사진같은 흑백의 명암과 구도의 미감에 완전히 홀려버렸어. 알고보니 <데어 윌 비 블러드>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하고 <부기나이트><매그놀리아><펀치 드렁크 러브><인히어런트 바이스> 등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대표작들에 참여했던 로버트 엘스위트 촬영감독의 작품이더라고. 흑백 영화도 드물지만 흑백 드라마라니. 현대 영화 중 오랜 역사의 건축물과 바다, 풍광이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색을 포기한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봤는데 당장 떠오르지 않아. 스티븐 자일리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밝고 푸른 하늘과 화려한 의상으로 채워진 아름다운 이탈리아에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하며, “흐린 하늘과 비, 비에 젖어 반짝이는 도로를 원했다”고 말한 바 있어. 실제로 촬영도 겨울에 했으며 모든 이야기는 겨울에 벌어진다고.(수영복만 입고 바다 수영하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겨울에 이탈리아를 다녀온 적 있다면 증언 부탁해🧐) 또 다른 인터뷰에선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소설 집필 당시 영화화를 상상했다면 아마 흑백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어. 드라마의 리플리가 원작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면 감독의 말에 적극 동의하는 바야. 앞서 말했듯 최소한의 감정으로 묘사되는 리플리는 거의 대부분 무표정하고, 사람들 앞에선 필요한 가면을 바꿔 끼우며 친절한 표정을 가장해. 화려한 색들을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지닌 감정의 종류라고 한다면 모노톤의 세계에 살고 있는 리플리에게 그런 다채로운 색은 존재하지 않을거야.
#빛과 그림자의 화가 카라바조
흑과 백은 빛과 그림자야. 디키의 부를 충분히 손에 넣은 리플리가 자신을 위해 한 첫 사치는 미술관같은 아름다운 아파트를 빌리고 빛과 그림자의 화가 카라바조 화집을 사는 일이었어. 카라바조는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를 연 대표 화가로서 폭력적이고 불쾌한 장면의 사실적 묘사와 빛과 그림자가 두드러지는 화풍이 특색이야. 실제로 사람을 죽인 뒤 평생 쫓기며 살다가 결국 객사했는데, 드라마 초반 디키가 리플리에게 카라바조의 ‘일곱 가지 자비의 행위’(2회의 제목)를 “로마에서 사람을 죽인 지 일 년 후”의 그림이라고 소개하는 장면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예언이야. 특히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에서 다윗의 얼굴은 카라바조의 얼굴이라고 해. 화가가 말년 참회의 심정으로 살인 후 연민을 느끼는 듯한 표정의 다윗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 그림을 유달리 길게 바라본 리플리는 순간 자신의 운명에 대해 자기 연민을 보낸걸까. 리플리 내면엔 오히려 심미적인 욕망이 거대해보여. 리플리가 고른 디키의 가운 디자인을 비웃는 상류층들은(디키와 여자친구 마지, 친구 프레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등 예술가를 직업으로 삼지만 정작 재능은 전무해보이는데, 이 부조리함에 리플리는 속으로 분노를 쌓아왔을지도 몰라. 디키가 되는 과정에서 디키의 반지, 로퍼, 양복, 코트를 착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디키의 화구로 그림을 그리는 리플리에게 ‘리플리 증후군’이 있었다면, 스스로를 디키라기보다 카라바조라고 믿고 싶었던 쪽에 가깝지 않을까. 이후 리플리가 이동하는 도시들은 카라조바가 망명 중 걸작을 남긴 장소 나폴리, 시칠리아인 점도 흥미로운 설정이지. 살인 후에 탐닉하는 것이 예술이라니. 그런데 나 역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는 원하는 취향에 맞는 제품과 작품들을 갖고 싶기 때문이거든. 돈이 있어야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는 아이러니에 묘하게 공감됐어. 악마적 재능이라고 불린 카르바조의 작품 이면에 미화될 수 없는 사건들이 공존하는 것 또한 불편한 진실이고.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위기를 벗어나는 리플리와 카라바조의 삶을 평행우주처럼 겹쳐놓은 연출은 이 드라마가 원작소설, 두 편의 영화와는 차별화 된 새로운 이야기임을 증명하고 있어.
#변태적으로 디테일한 서스펜스
오컬트를 좋아하지만 스릴러는 좋아하지 않는다면 믿어줄래? 심장 졸이는 장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든. [리플리: 더 시리즈]는 너무 잘 만든 스릴러라서 영원히 결말을 못보는 줄 알았어. 5회에서 최소 10번은 멈췄어.(정말 대단한 에피소드였어..😇) 살면서 본 모든 장르를 통틀어 압박감이 순위권 안이었다고 감히 단언할게. 그런데 이런 장르에서의 긴장감은 주인공의 정체가 들킬까봐 염려하는 감정이잖아. 어째서 망설임 없이 체계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악인이 궁지에 몰릴 수록 서스펜스의 밀도는 높아지고 위기를 넘어서면 안도하게 될까. <오션스 일레븐>의 계보를 잇는 악동들의 서사가 아닌 이상 보통 추적자의 입장에서 악인과의 줄다리기가 전복되는 순간 희열을 느끼도록 연출하는 데에 반해 [리플리: 더 시리즈]는 추적자가 방해자처럼 느껴지기까지 해서 리플리라는 인물에 동의하지 않지만 동일시되는 독특한 경험을 했어. 이 작품이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변태적일만큼 디테일해. 흑백 화면과 더불어 인물의 액션이나 대사들이 최소화 된 미니멀리즘 필름 느와르인데 이를 극대화하는 장치로 화면에 보이지 않는 장면을 소리로 상상하게 하는 장면이나 반복적인 형태의 위기를 여러 번 배치하여 긴장을 놓을 수 없도록 구성했어. 무엇보다 인간의 심리에 능통해. 인물 간 뜸을 들이는 시간, 시선이 향한 위치, 리플리를 조여오는 의심의 방향과 빈도와 속도와 같은 아주 세세한 계산과 분석이 관객의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어. 영화의 형식이 상황을 원하는대로 조종하는 리플리와 다름 없고, 리플리는 카라바조이고, 카라바조의 작품세계는 영화의 형식으로 순환되는 구조인거지. 그리고 기존 영화들과는 다른 캐릭터 설정도 신선해. 드라마의 디키는 가장 우유부단한 디키일거야. 거만하고 무례한 전형의 상류층 친구 프레디는 아예 여자 배우(엘리엇 섬너)가 남성을 연기하면서 보다 심리적으로 리플리를 압박하는 캐릭터로 바뀌었어. 드라마 후반부 마지(다코타 패닝)의 변화도 흥미로웠어. IMDB 평점이 무려 8.2더라고. 아마 다음 시상식에서 [리플리: 더 시리즈]의 이름이 꽤 많은 부문에 오르지 않을까.
#관람포인트01
스티븐 자일리안 감독은 각본가로 활발한 활동을 해왔어. 필모그래피가 아주 대단해. <쉰들러 리스트><한니발><갱스 오브 뉴욕><머니볼><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아이리시 맨> 등 줄줄이 명작 뿐이야. 이번 [리플리: 더 시리즈]에서도 특유의 차가우면서도 우아한 무게감을 엿볼 수 있어. 각본 뿐 아니라 뛰어난 연출력에 감탄만 나오는데 보통 해외 시리즈들은 총괄 프로듀서 개념의 크리에이터가 있고 각 에피소드마다 각본과 연출이 다른 경우가 많잖아. [리플리: 더 시리즈]는 스티븐 자일리안 감독이 8편 전체의 각본과 연출을 도맡았어. 이런 사람을 천재라 하는걸까..?
#관람포인트02
4회에서 [리플리: 더 시리즈]의 모티브가 된 장면이 등장해. 바로 로마에 도착한 리플리가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을 방문해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 3부작을 관람하는 장면이야. 그 중 가운데 작품인 ‘성 마태오의 순교’를 오래 바라보는 리플리에게 신부가 “빛이네요. 언제나 빛이 중요하죠”(La luce, sempre la luce)라고 말해. 인터뷰에 따르면 이는 실제 감독이 이탈리아 페루자에 있는 작은 미술관에서 카라바조에게 영향을 받은 화풍의 그림을 오래 바라보자 경비원이 감독에게 던진 말이라고 해.
📮구독자 답장왔어요📮
From.돌핀호텔
#추천작 #아르테
만화 [아르테] 를 추천합니다 [신부 이야기], [셜리] 등을 그린 작가이고요 이 작가는 아시죠? 디테일에 미친 오타쿠라는 것을요.. 이번 이야기는 여성이 최초로 궁중화가가 되는 여정이랍니다~ 궁중화가가 되는 것이 이야기의 끝이자 이 사람의 목표는 전혀 아니지만요~~ 배경은 이탈리아 피렌체 입니닷 당시의 그림 음식 복식 기타등등을 생생히 느낄 수 있고 마감을 미루고 있는 사람에게도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
📝레이지 카우의 답장
[셜리]는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림체가 약간의 허들이긴 한데 막상 보니 휘리릭 읽었던 기억이 나요. [아르테]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는군요😆 마감을 미루고 있는 사람이 이걸 보면 과연 마감을 할 수 있을까요..? 프로 마감러로서 첫 장을 펼치기 두려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