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와 극장에서 만날 시간이 되었어. 운 좋게 왓챠파티@무비랜드의 10월 호스트가 되어 레이지 카우가 오래 염원해온 <후 아 유> 극장 관람이 현실이 되었다는 꿈 같은 소식을 먼저 전해! <후 아 유>를 향한 내 집착기는 지난 레터에서 읽을 수 있어. 예전부터 구독자들과 온라인 왓챠파티를 늘 열어보고 싶었는데 의외로 오프라인에서 먼저 기회가 생겼네? 이번에도 마지막에 구독자 초대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니 끝까지 읽어줘💌

부모로부터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한 소녀가 명명되지 않은 감정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최소한의 단어로 표현한 짧은 소설,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몇 개월 전 소개했었어. 읽은 시간보다 책을 덮은 후 여운이 더 길었던 키건의 문장을 붙잡고 싶어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마음이 향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 아일랜드 출신 배우 킬리안 머피가 제작, 출연하는 동명 영화의 원작이기도 해.

척박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앞 두고 들뜬 공기가 작은 마을을 덮은 1985년의 아일랜드 겨울. 석탄 상인 ‘펄롱’이 목격한 어떤 사건이 성실한 한 개인의 일상을 깨트리는 과정을 그린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클레어 키건 특유의 문체가 화자의 시선으로 벌어지는 일상을 뒤쫓고, 서술되는 경험 안에서 미묘하게 변화하는 감정을 결말 이후의 몫까지 독자에게 전이시키는 놀라운 소설이야. 때문에 클레어 키건은 굉장히 내면적인 소설에 탁월한 작가라고 생각해. 모노로그 소설같기도 하고.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작이었어.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주문받은 석탄의 물량, 배달 시간과 장소, 아내와 아이들을 충분히 먹이고, 다섯 딸을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을 만큼 돈을 버는 일들 같은 생각들로 하루를 채우며, 끊임없이 지금이 아닌 다음에 골몰하는 펄롱 안에 어떤 균열이 생겨난 걸까. 크리스마스 전 석탄 배달을 간 수녀원 창고에 갇혀있던 어린 소녀가 아이들과 놀이 중 실수로 갇힌 모양이라는 석연치 않은 수녀원장의 말이 시작이었을까. 세계적 불황에 따뜻한 이불을 덮을 수 있고, 내일 할 일을 떠올릴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소박하게 생각하는 펄롱 의식 사이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는 의문이 떠오르는 횟수만큼, 누가 나의 아버지였을까, 펄롱은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기도 했어. 

펄롱은 아버지를 모른 채 마을에서 꽤 부유한 윌슨네 집안 가정부로 일하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어. 윌슨 씨의 배려로 좋은 집에서 아들처럼 자라온 덕에 무시받지 않았고 석탄 기술까지 배워 어엿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펄롱이라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잘 알았고, 계속해서 다음 해야 할 일만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지. 때문에 펄롱이 수녀원에서 목격한 이질적 순간은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보기'를 시작하게 된, 그야말로 '사건'이었어.

#타인의 친절 덕에 얻은 안전한 삶

수녀원은 부모를 잃거나 미혼모인 여성들에게 세탁 일을 맡기고 일종의 자립 지원을 해주는 단체를 운영중이었는데 마을 전역에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딸과 비슷한 또래인 소녀가 창고에 있던 모습이 끈질기게 떠오른 펄롱이 다시 한 번 수녀원을 찾아 갔다는 소식이 금세 마을에 퍼지는 건 시간 문제였지. 친한 이웃은 슬쩍 펄롱에게 충고해. 딸들이 입학할 좋은 학교와 수녀원이 무관하지 않다거나, 지금처럼 모른척 해야 살 수 있는 일도 있다는, 그러나 추운 겨울 어떤 일을 당했을 지 모르는 어린 소녀를 뒤로하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는 펄롱 자신의 위선을 곱씹게 되는 말들을. 

소설이 펄롱의 내면에 깊게 다가가는 동안 동시에 묘사하는 사건은 그가 석탄을 배달하고, 집에 돌아와 크리스마스 식사를 준비하는 아내를 지켜보고, 딸들과 식사를 하는 지극히 평범한 상황들 뿐이야. 그런데 소설 초반과 후반, 펄롱의 하루는 변하지 않았는데 곧 펄롱이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일상으로서 사뭇 다른 무게감을 갖게 돼. 우리는 가진 것이 사라지려 할 때에서야 가치를 깨닫곤 하니까. 펄롱에겐 안전한 삶이 있어. 이제 그는 너그러운 윌슨이 아니었다면 펄롱이 발견한 소녀의 자리에 있었을 미혼모인 어머니를 떠올려. 윌슨이 베푼 사소한 친절함이 모여 구원한 자신의 안전한 삶에 대해서도.

#무관하지 않은 우리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펄롱이 내린 결단 이후의 삶은 알 수 없어. 책을 덮은 순간부터는 독자의 몫이야. 다만 한 겨울 맨발인 소녀 손을 잡고 일부러 평소 다니는 길을 따라 떳떳하게 집을 향하는 펄롱의 걸음에서 전해오는 고결한 품위는 확실하게 남았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일상의 소중함이라기보다, 소중한 일상을 모두 버릴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선택한 작은 친절이라는 점. 적어도 크리스마스에 구조된 소녀에겐 기적이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된 날이었을 거야. 오랜만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떠오르기도 했어. 세상은 수많은 타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들과 나는 무관하지 않고, 서로에게 다정할수록 우리 삶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거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18세기에서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 협조 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했던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야.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을 교화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상 무관한 여성들을 감금하여 노동력 착취, 성폭력 등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해. 배경을 알고 본다면 펄롱의 선택이 결코 사소하지 않음이 와닿을거야. 하지만 실제 사건이 아니더라도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같은 세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멈춰서 한 번쯤 되돌아보는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해. 작은 눈길과 도움이 분명 누군가에겐 인생을 구원하는 기적이 될 수 있을거란 믿음으로.

<후 아 유> 극장상영추진위원회

왓챠파티@무비랜드 초대이벤트🎟️

사랑은 어디서부터 집착이 될까. <후 아 유>를 극장에서 한 번만 보고 싶다는 염원은 이상하게 사라지지 않더라. 짝사랑 전문가 레이지 카우가 드디어 이 사랑이 쌍방이라는 소식을 들었어. 안타깝게도 왓챠파티@무비랜드는 예매도 추첨제더라고. 그래서 구독자들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했어. 이 링크에 신청 해주면 함께 할 파티원을 고심해서 뽑을게. 이번에도 꼭 갈 수 있는 사람만 신청해줘!

(무비랜드 라디오에서 <후 아 유>에 대해 이야기 했으니 많관부🤗)

• 상영회 일시 : 10월 16일(수) 20:00
• 극장 : 무비랜드
• 이벤트 기간 : ~10월 10일(목)
• 당첨자 발표 : 10월 11일(금) 개별당첨안내
• 당첨자 : 1명(1인 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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