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1일 <패터슨>과 함께 첫 편지를 보냈던 눕방일기를 2년 넘게 매주 수요일 연재해오는 동안 티를 꽤 내기도 했는데 정말 고민이 많았어. 시작부터 이야기해볼까. 긴 글이 될거야.
당시 연이은 퇴사로 마음이 피폐했어. 만 8년 동안 즐겁게 일했던 영화 업계와 약 15년 간 살았던 서울을 떠나 부산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했었거든. 하지만 반 년만에 기대와 다른 현실에 그만둬야했고 몸과 마음이 바닥을 쳐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가 없었어. 그렇게 시작한 1인 프로젝트가 ‘레이지 카우 소사이어티’야. 처음엔 제품을 만들며 시작했어. 브랜딩 외주를 받기도 했고. 그러다 일도 없고 뭐 해먹고 살지 고민하던 중 미루던 글을 써야겠다 생각한 거야. 돈 벌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
항상 글을 쓰고 싶어했으면서도 태생이 게을러서 데드라인이 있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아니라면, 두가지의 교집합은 일이었으므로, 일 외에는 대부분 미루곤 했어. 영화는 여전히 많이 보는데 남는 기록은 없고, 매주 스크리너 검토 회의 때 영화를 요약 소개하던 습관이 있으니 ‘스크리너 소개하듯 가볍게 본 영화들 기록해 봐야지, 그런데 마감 없으면 안쓰겠지?’ 라는 의식의 흐름으로 하게 됐어. 사전 구독 신청 기간도 거의 없었어. 결정을 번복할까봐 일단 한다고 선포해버렸거든. 원래 생각나면 바로 해야하는 불도저라서.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23년부터 회사를 다니게 된거야. 얼떨결에 사이드 프로젝트가 되어버렸지. 돈도 되지 않는 일을 이렇게 성실하게 오래해본건 처음이야. 하다보니 처음엔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거지. 수많은 콘텐츠 추천 뉴스레터들 중에서 차별화될 포인트가 하나도 없었어. 빠른 국내외 소식을 전달해주지도 못하고, 재미있지도 않고, 깊이 있는 담론을 다루지도 못하고, 발행인이 궁금한 사람도 아니니 눕방일기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항상 생각했어.
회사에서 주로 몇 개월에서 일 년까지, 완성도가 중요한 장기 프로젝트를 해오던 습관이 있어서 단기간에 지속적으로 결과물을 내는 방식이 잘 맞지는 않았어. 다만 맘에 드는 글은 영원히 나오지 않을테니, 완성도와 무관하게 사람들 앞에 결과물을 내놓고 평가받는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일주일 안에 할 수 있는 만큼을 쓰기로, 그만큼이 내 실력이고 점점 같은 시간 안에 완성도를 높이는 걸 목표로 삼자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왔었지. 그럼에도 흔들릴 이유는 많았어. 회사에서 일하는 나머지 시간엔 틈나는 대로 무언가를 봐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어. 원래도 일주일 중 토요일 하루만 약속을 잡는데 그 마저 포기하게 되더라. 예전엔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일을 하며 볼 수 있었는데 이젠 다른 일을 하다보니 시간을 내서 봐야한다는 것부터 나로선 적응이 필요한 일이었어. 그래서 더이상 취미로 한다는 말로 회피해오던 시기를 건너왔음을 인정해야만 했어.
이쯤 되니 보상심리가 발생해. 안그래도 체력이 저조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해서 얻는게 뭘까? 스멀스멀 피곤한 마음 틈으로 물음표가 떠올랐어. 정체된 구독자 수, 줄어드는 오픈율은 생각보다 스트레스였어. 심지어 나는 마케터라서 고객 반응 개선은 평생의 KPI거든. 더 다양한 주제의 기획기사를 써보고 싶었지만 이를 위해 챙겨봐야하는 콘텐츠의 양은 도저히 소화 불가능하다 싶었어. 구독자 데이터를 분석해서 타겟별 개선안을 찾아봐야하지 않았을까 싶었을 때도, 새로운 광고 소재 아이디어 고민을 해야할 때도, 하다못해 아카이빙을 더 부지런히 했어야 했을 때도 ‘도저히 회사다니면서 시간과 에너지가 나질 않아’, ‘이 이상은 무리야’ 이런 생각을 했어. 정말로 그렇기도 했지만 좋은 핑계이기도 했던 것 같아.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나았을까? 답할 자신이 없어.
뉴스레터로 무엇을 얻고 싶었는지 답은 확실치 않지만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인증받길 바랐나봐. 또는 영화와 멀어진 삶을 살고 있어서 자칭으로라도 한 발 쯤은 걸친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어. 어째서 영화인가도 물론 생각해봤지. 그냥 제일 좋아하니까?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영화 일이 가장 재미있었고 자기 유능감을 느꼈던 마지막 시기이니까. 현재가 아무리 힘들어도 당시 할 수 있었던 최선을 선택해서 지금에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요즘은 현재보다 과거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 어느 순간부터 뉴스레터의 글이 더이상 기대되지 않더라. 스스로도 내 글이 지겨웠어. 어떤 콘텐츠를 고를지, 어떤 감상을 쓸지 눈에 선해서 말이야. 남다른 인풋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은 변하지 않을테니. 오픈 수도 오히려 구독자 수가 훨씬 적었던 때보다 떨어지는 걸 보며 나만 그렇게 느끼는건 아니구나 싶더라고. 일희일비의 아이콘인 나는 평정심을 찾기란 너무 어려워.
뉴스레터를 연재하며 얻은 기쁨은 물론 컸지. '내가 보낸 메일을 열어보는 사람이 있구나!'에서 시작해 조금씩 올라가는 숫자를 보며, 디지털 창의 글자로부터 답은 없었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었어. 하지만 기쁨과 감사함보다 수치심이, 영원히 닿지 않을 곳에 메아리 치는 외로움이 더 잦아지더라고. 그저 지나치게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어.(라면서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제일 길게 보내는 나...) 재미있으려고 시작한 뉴스레터는 본의 아니게 한계를 증명할 것을 요구해왔고, 몇 년 간 계속된 실패에 공식적으로 방점을 찍은 존재가 됐어. 스스로도 팔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마케터라 할 수 있을까, 매력적이지 않은 글 마저 매력적으로 팔리게 만들 수 있는 탁월한 마케터가 아니니까. 누적된 몇 년간의 상념이 넘쳐 매일 이런 생각을 해.
누군가는 오래 버티는 것이 이기는 거라고 해. 물 잔을 넘치게 만들 딱 한 방울을 떨어트리기 직전 멈추는 것일까봐 지금까지 해왔어. 고작 2년 하고 난리를 치나 싶어 머쓱하긴 한데... 확장성은 딱 이만큼이라고 냉정하게 판단하기로 했거든. 그렇다면 다음단계를 어떻게 가져갈 지 고민했어. 이만큼의 에너지를 들여서 취미로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종종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좋아해서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해왔다던데, 난 그만큼 사랑하지도 못하는구나 생각하며, 이제 사랑의 크기로도 승패를 생각하는구나 자조했지.
항상 좋아하는 감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던 나는 관심이 필요했어. 그래서 마케팅을 하나봐. 아주 사소한 액션 하나에도 리액션을 기다리는 게 성격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오랫동안 습관이 되었어. 만족의 기준이 자꾸만 내가 아니라 외부를 향해 있어서 불행해지는 듯 해. 그래서 나름의 이벤트를 준비하더라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고, 뉴스레터에 집착하면 할 수록 뉴스레터와 무관하게 쌓여온 근래의 결핍을 엿보게 됐어. 돌이켜보면 집안을 일으켜야한다는 기대를 짊어진 어린 장남처럼, 주 1회 글 쓰기가 다였던 뉴스레터에게 의도치 않게 너무 많은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나 싶어.
사실 다음 주 소재까지 다 정해놓고 이틀 전 그만두기로 결심했어.(원래대로면 오늘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카오스], 다음주는 [체인소맨], [룩 백] 후지모토 타츠키 작가의 만화 [안녕, 에리]를 소개했을텐데. 재미있으니 추천!) 결심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지. 뉴스레터를 시작할 때처럼 일단 주변 사람들한테 말해보는 방식이었으니까. 서로 헤어져야 행복한데 결말을 지연시키고 있는 유통기한 지난 인연일까봐 무서워서 질러봤어. 뉴스레터가 사라지면 오히려 힘들지 몰라. 내가 부여한 역할일지라도, 포지셔닝하고 싶던 정체성이 사라져버렸을 때 괜찮을 수 있을까. 누구든 연락하고 싶은데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밤에 어디선가 글을 읽을 구독자를 떠올리며 잠에 들었던 나는 이제 어떻게 바깥과 연결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아직도 해.
그런데 완전히 그만두지는 않을 수 있어. 워낙 마음의 여유가 없는 요즘이라 거리두기가 끝나고 나면 민망하게 돌아올 지도 몰라. 다만 기존과 같은 방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글의 방향성은 고민한지 오래 됐거든. 개별 콘텐츠가 아니라 기획성 글로 격주 연재도 고민했지만 이런 콘텐츠는 자주, 정기적인 발행이 중요해서 결정을 미뤘어. 오픈율이 신경쓰이니 장기 미오픈 구독자는 삭제할까, 10명이 남더라도 유료를 해볼까, 개인적인 글을 써볼까, 온갖 생각을 다 해봤어. 일단 불규칙적으로 갑자기 소개하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보내거나, 쓰고 싶은 다른 주제를 쓸지도. 콘텐츠와 전혀 상관없이 개인 소재로 인스타툰을 해보고 싶었는데 문제는 내가 그림을 전혀 못그려서 이건 확실히 못할 것 같아(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