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안에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사랑과 외로움이라는 원초의 감정이 자리잡고 있어. 3천년의 시간동안 신화의 자리엔 과학이 들어섰고, 정령의 존재가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시간은, 감정은, 사건은 결국 모두 이야기가 되어 남아. 서사학자인 그녀가 매료된 건 지니보다 지니가 들려준 사랑의 서사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 세월의 이야기 속에 절절하게 존재했던 매혹적인 그 감정을 욕심낸 순간부터 사랑을 담보로 이별을 유예하길 택한 알리테아는 아주 인간적인 갈망에서 피어난 그녀의 소원이 실패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마지막 소원을 빌어. 이야기의 실패를 피하기 위해서 기꺼이 사랑의 실패를 선택하는거야. 그것을 실패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름다운 이야기 사이엔 끝 없는 기다림들이 있었어. 실패처럼 느껴지는 그 공백들도 또 하나의 이야기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덜 외로울 수 있을 것 같아. 실패가 유일하게 가치 있을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이야기로의 가능성을 갖는 것 아닐까? 나는 가끔 내 인생이 실패한 독립 다큐멘터리 같다고 생각했어. 원하는 그림이 나올때까지 찍으려 했는데 예상했던 장면은 나오지 않고, 그만두기엔 너무 오래 찍었고, 언제 그만둬야할지 모르는 상태로 접어든 애매모호한 작품 말이야. 진정성은 있겠지만 작품성도, 대중성도 없는 그런 지루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그럼에도 아직 꿋꿋하게 촬영중일 내 인생이 조금 가엾더라고. <3000년의 기다림>을 보니 내 고독과 하나가 될 사람이 나타날때까지 기다리는 지루함도 조금 견딜만한 것 같아.
사실 보는 내내 어떻게 소원을 빌 게 없을 수가 있지?라고 생각했어. 난 첫 번째 소원은 세계 평화야. 세부 옵션 설정이 가능하다면 세계 평화의 조건이란 어떤 나라도 전쟁하지 않고(내전 포함)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이 되는거야. 두 번째는 우리 가족의 3대까지(내 조카의 자식까지)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의 연금복권에 당첨되고 싶어. 세 번째는 소원을 유예시키고 싶을 만큼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거야. 어때? 완벽하지? 앞으로 골동품 가게를 들르면 호리병을 유심히 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