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과 해야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서 키누와 무기는 사뭇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되어있어. 특히 여전히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으로 일을 하고 싶어하는 키누를 무기는 현실감각 없이 철 없는 사람처럼 취급해. 키누는 더이상 자신을 응원하지도, 따뜻하게 바라봐주지도 않는 무기가 느닷없이 말하는 결혼이 점점 더 멀게만 느껴져. 사실 나는 현실 로맨스라고는 해도 일방적으로 무기라는 캐릭터가 비뚤어졌다고 느끼긴 했어. 혼자 힘든 일 다 하고 있다고 느끼는 전형적인 대리병 말기인데, 본인이 포기한 것들을 직시하기엔 자신의 삶이 너무 비참하니 상대방을 까내리면서 본인의 자존감을 지키는 그런 캐릭터랄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 역시 무기와 비슷한 나이에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꿈은 어디까지 포기할 수 없고, 어디서부터 현실과 타협해야하는 걸까, 로맨스 영화의 탈을 쓰고 이런 구체적인 청춘의 고민들을 차근차근 따라가는 이 영화의 끝엔 5년 후의 무미건조한 연인의 얼굴이 남아있어. 하지만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닐거야. 살다보면 영원히 좋아할 것 같았던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게 생기기도 하니까. 어느 누구도 먹고 사는 책임을 지는 사람에게 꿈을 포기했다고 욕할 수는 없어. 사실 이러한 과정은 굉장히 보편적인 이야기라 오히려 영화가 평이하다고 느껴졌는데 마지막 장면이 의외로 마음에 오래 남더라고.
시들기 전 예쁜 꽃다발이었던 순간은 누구에게나 분명히 존재하고 그 순간이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인거야. 그리고 인생은 계속 이어진다는 게 중요한거지. 키누와 무기가 헤어졌다고 해서 그들 인생의 사랑이 끝인 건 아니야. 두 사람은 앞으로도 각각 또 다른 기적들을 만나고 여러 꽃다발같은 사랑을 하게 될거야. 그러니 과거를 부정할 필요는 없어. 그때 고마웠고, 잘 지내라고 그렇게 서로를 흘려보낼 수 있게 된 두 사람의 미래를 기대하게 되는 결말의 힘이 좋았어. 그리고 이 메세지를 단 한 장면으로 연출한 것에 감탄을 하고 말았어.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 이 영화를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