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를 봤어. 갑작스레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은 남편은 생전에 했던 약속을 떠올려. 바로 먼저 죽은 사람이 가장 좋아했던 것을 대신 마무리 해주자는 거였어. 그래서 노년의 제르맹은 아내가 활동하던 현대무용단에 입단하고, 평생 관심도 없었던 춤의 세계에 빠져들게 돼. 보통 물리적으로 만날 수 없는 이별과 마음에서 상대를 떠나보내는 정신적인 이별, 누구나 이별은 두번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이 두번째 이별의 과정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노년의 삶을 비추는 이야기야. 나는 언제나 나이 드는 것에 두려움이 있거든. 그런데 늙어도 삶은 이어진다는 당연한 메세지를 통해 용기를 주더라고. 개봉 3주차가 시작되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어서 극장에서 보도록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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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맥락에서 이번 주 추천해줄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코민스키 메소드]야. 마이클 더글라스가 제작과 주연으로 참여한 시트콤인데 각 회차가 20~30분 내외라 마음 편히 볼 수 있어. 러닝타임 짧은 걸 선호하는 나로서는 이것만으로도 별 한개를 더 줄 수 있을 정도야. 극 중 배우이지만 작품보다는 연기 학원 선생님으로서의 커리어를 오래 쌓아온 샌디 코민스키(마이클 더글라스)와 그의 에이전시 대표인 노먼 뉴랜더(앨런 아킨)는 40년도 넘은 친구 사이야. 실제 가족보다 더 서로를 잘 아는 사이지. 70대, 80대를 보내는 그들의 일상은 장례식과 병원을 빼고 말할 수 없지만, 여전히 일, 사랑, 가족, 돈 등 보편적 문제로 고민하는 삶이야. 불완전함을 따뜻하게 껴안는 시선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 할 수 있어.
[코민스키 메소드]는 노먼의 아내가 병으로 떠나면서 시작해. 소중한 사람의 상실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은 본인이 될 수도 있는 나이의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주는 에피소드일거야. 꽤 용감한 선언이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살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노년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여전히 고민하는 서사가 펼쳐지는 방식에 반했어. 일단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샌디와 노먼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동정과는 거리가 먼 시선으로 그 세대와 나이대의 일상을 관찰하거든. 슬픔 때문에 더 심술궂어진 노먼과 그 짜증을 견디며 친구 옆을 지키는 샌디의 티키타카가 재미있어. 전립선에 문제가 생겨 비뇨기과를 공유한다거나, 새로운 애인과의 관계를 앞두고 발기부전제를 챙기거나,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 서로 뜬 구름 잡는 대화만 한다거나, 단골 가게의 당장 쓰러질 것 같은 노년의 웨이터 등 말 그대로 늙음으로써 생기는 신체적 변화, 대체로 부정적 변화에 대해 자조적인 유머를 재치있게 던져. 전립선 문제로 소변을 시원하게 못보는 경험은 아마 내 평생 하지 않겠지만 이상하게 그런 부분까지 성별과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하게 만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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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정도 나이가 들면 어쩐지 여러 문제에 현명한 답을 내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여전히 그들은 새로 썸타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데이트를 해야할지까지 서로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하고 있어. 이런 유쾌함이 그저 웃음으로 그치지 않는 이유는 동시에 삶이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야. 샌디는 세번의 결혼에 실패했고, 배우로서 그럴 듯한 커리어를 만들지 못했기에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역할에 몰입해. 의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더이상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결핍이 존재하고 말이야. 노먼도 평생 아내와 사이가 좋았고, 대규모 에이전시의 회장이니만큼 남부럽지 않은 재력도 가지고 있지만 아내는 떠났고 8번이나 재활원에 들어간 알콜중독자 딸과 사이언톨로지교에 빠진 손자까지 남은 가족과의 관계는 엉망이야.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은 없어. 그저 각자 몫의 행복과 불행이 있지. 그 불행의 틈을 메워 주는 것이 노먼과 샌디의 관계였다고 생각해. 그래서 끊임없이 일상의 행복과 불행을 맞이하더라도, 완전함과는 거리가 먼 결점 투성이인 사람일지라도, 저런 관계가 있다면 사는게 꽤 재미있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꿈꿔보게 돼.
아직 젊은 내가 삶을 운운하기는 부끄럽지만 사는 건 그런 것 같아. 소중한 것은 계속해서 사라지고 어떤 새로움도 더이상 없을 것 같은 순간이더라도, 살아가는 한 또 어떠한 희망은 이뤄지기도 한다는 것. 완벽한 행복도 불행도 없다는 것. 물론 이들의 이야기는 극 중 잘생긴 얼굴, 나이에 비해 관리된 몸, 재력 등 많은 판타지에 기반하기에 어쩌면 불가능한 노년일 수 있지만, 그래도 이런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나 역시 저렇게 늙을 수 있다면 그렇게 두려워하기만 할 필요는 없겠다는 용기가 생기거든. 지난 눕방일기에서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의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폴 역할이 제일 좋았다고 했던거 기억날 지 모르겠어. 그 캐릭터도 같은 지점에서 매력을 느꼈어. 한때 최고의 영화배우였던 스타가 새로운 플랫폼인 OTT 시리즈물에서 저물어가는 노년을 연기한다는 점에서 감정이입이 되기도 하고 말이야. [코민스키 메소드]의 엔딩은 근래 본 어떤 작품들보다 완벽했어. 시즌3로 완결이니 꼭 봤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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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샌디는 사람들의 아유 속에서도 꿋꿋하게 잭 다니엘에 닥터 페퍼를 섞어 마셔. 도대체 무슨 맛인지 너무 궁금하지 않아? 잭 콕과 많이 다를까? 난 닥터 페퍼를 좋아해서 무척 궁금해. 찾아보니 지큐에서 가수 장기하가 최고의 잭 페퍼 비율을 공개했대. 기회 되면 따라 마셔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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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의 손자로 나오는 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바로 <식스센스>와 <에이 아이>의 아역이야. 알아 본 사람 있어? 난 전혀 몰랐어. 너무 뻔뻔해서 한대 때려주고 싶었는데, 과거를 알고나니 어쩐지 그런 생각을 한게 미안해졌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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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관람포인트3. Musso & Frank Gri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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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샌디와 노먼이 항상 방문하는 식당인데 실제 1919년에 오픈해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고 해. 이 식당엔 영화인들을 위한 별도의 방이 있었다고 하는데 “the genesis of Hollywood”라고 불릴 만 하지? 조지 클루니, 조니 뎁, 브래드 피트, 해리슨 포드 등 영화 배우들이 사랑하는 곳으로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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