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광화문이라 바로 옆 동네인 서대문에서 일하는 친구와 종종 점심에 만나곤 해. 지난 주에도 점심을 함께 했는데 갑자기 시청역 부근 성공회성당 지하에 있는 친구의 할머니 납골당에 가게 됐어. 도심 한복판에 납골당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데다가 납골당에 붙은 사람들의 사진을 찬찬히 보다보니 나보다 어리거나 또래거나 꽤 젊은 이들의 웃는 얼굴이 보여서 놀랐어. 최근 사람들과 류이치 사카모토의 자서전 이름인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어. 참고로 이 문장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영화 <마지막 사랑>의 대사이기도 해. 이 말의 무게를 실감하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죽음 이전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고 새삼 생각했어. 이번에 찾아오는 보름달을 보면 오랜만에 사진을 찍을래. 올해의 마지막 보름달은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개봉일인 12월 27일이래. 그리고 레이지 카우는 곧 겨울방학을 다녀올 예정이야. 다음주는 번외편이니 가볍게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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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류이치 사카모토: 에이싱크
故류이치 사카모토(사카모토 류이치가 맞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류이치 사카모토로 표기할게)의 유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괴물>이 2주 전 개봉했어. 게다가 2주 후인 12월 27일에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가 개봉 예정이더라고. 올해 3월 별세 후 너무 당연하게 그의 음악을 알고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이하 <코다>)와 <류이치 사카모토: 에이싱크>(이하 <에이싱크>)를 가져왔어. 모두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단건구매로만 볼 수 있어. <코다>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인후암을 판정 받은 후 작업을 모두 중단했다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사운드트랙을 시작으로 오리지널 앨범 작업까지, 다시 현업에 복귀하는 시점을 담은 다큐멘터리야. <에이싱크>는 <코다>에서 류이치 사카모토가 탐구한 소리의 결과물인 앨범 ‘Async’의 공연실황 다큐멘터리라서 연이어 보는 걸 추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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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함의 완전함
<코다>를 18년 개봉 당시 봤을 때 잘 만들었다는 감상은 있었지만 내 개인에게 특별한 작품으로 남진 않았어. 5년의 시간동안 난 무엇이 변했을까? 이번에 다시 보니 감정적으로 여러차례 흔들렸어. 흥미로웠던 건 뮤지션들은 어느 경지에서부터 ‘음악’이 아닌 ‘소리’의 해체와 재조합에 매료된다는 거야. <코다>에서 류이치 사카모토는 완벽히 조율된 피아노와 음계의 음악이 오히려 인간에 맞춰진 부자연스러운 소리같다고 말해. 쓰나미로 망가진 도시의 망가진 피아노로 연주한 망가진 소리가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말이야. 불완전함을 껴안아 완전함을 역설하는 그의 음악적 도전은 당연하게도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얻어내는 거야. 새로운 음악을 위한 실험 과정에서의 레퍼런스는 고전영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1972)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사랑>(1990)이야. 얼음 속 물에서 ‘낚은’ 소리에 대해 “내가 들은 가장 순수한 소리”라고 감탄하기도 해. 음악에서 소리로, 궁극적 해답을 찾는 그의 음악적 탐구는 음악의 모든 기원인 가장 작은 단위의 소리로 향하고, 그것은 새롭다기보다 오래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원형의 감각을 발견하는 여정처럼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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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책임을 지는 사람
<코다>를 보면 알겠지만 <에이싱크>는 기존 류이치 사카모토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음악의 공연이 아니라 실험적인 소리들로 가득차있어. 그래서인지 그의 명성과 <코다>에 비해 관객수는 적은 편이야. 아마 <코다>와 동시개봉이 아니라 약 2개월 후 개봉한 것도 영향이 있었겠지. 나 역시 유명한 곡들이 안나온다고 시큰둥했던 관객 중 한 사람이었어. 그런데 이제와 다시 보니 5년 전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구나 반성했어.(You know nothing lazy cow!) 아티스트로서 본인의 업을 끝까지 들여다 본 사람만이 내놓을 수 있는 결과 같았거든. 대중의 음악은 아닐 수 있겠지만 칼날처럼 예리하고 그토록 찾았던 자연에 가까운, 원초의 감정을 건드리는 그의 연주는 그 자체로 퍼포먼스야. 난 프로로서의 자각이 있는 사람을 좋아해. 고도의 집중과 집요함으로 탄생한 공감각적 종합예술을 보는 것도 좋아해. 변할 수 없는 환경 탓을 자주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져들고 있는 요즘 어떤 환경이든 내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위해 다시 치열해보고 싶어졌어. 코다의 마지막은 피아노 연습을 하는 류이치 사카모토거든. 아마도 피아노 기본기같은 곡인 듯 해.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이 남았을 지 모르는 사람이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이 필요할 지 모르는 목표를 세우고 있어. 손이 너무 굳어서 매일 연습해야겠다고 머쓱한 웃음을 지으면서.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많은 사람, 마지막까지 기존을 답습하지 않는 무언가를 열망했던 사람, 자신의 일을 충분히 사랑했던 사람, 마지막까지 삶을 제대로 완결 짓는 사람, 그래서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는 사람. 사는 일에 책임감을 갖는 사람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목격할 수 있어서, 그의 부재에 슬픔이 뒤늦게 밀려와. 27일이 되면 역시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보러 가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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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1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개봉 전 <괴물> 사운드트랙인 ‘aqua’ 연주 장면 일부가 선공개 되었어. 이 다큐멘터리는 류이치 사카모토 전 생애의 대표곡 20곡이 담겨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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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2
<코다>를 보고나면 역시 <솔라리스>(1972)와 <마지막 사랑>이 보고싶어져. <솔라리스>는 웨이브, 왓챠, 네이버 시리즈온, 씨네폭스에서 볼 수 있는데 <마지막 사랑>은 아쉽게도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없어. 난 <에이싱크>에서 연주한 곡 중에 <솔라리스>에서 탄생한 ‘solari’가 제일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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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3
의 류이치 사카모토 최애곡은 뭐야? 'Merry Christmas Mr.Lawrence'와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마지막 황제>, 이외에도 수많은 대표곡들이 있지. 나에겐 <토니 타키타니>의 ‘solitude’야. 언제 들어도 1분 안에 울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같아. 그리고 비교적 최근작이자 내 올해의 영화에 가장 먼저 손꼽을 코고나다 감독 <애프터 양>의 ‘memory bank’도 꼭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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