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제목 보고 메일 지울 뻔 한 건 아니지? 약 한 달 전부터 하루에 3~5번 정도는 투자, 금융 관련 스팸 문자를 받고 있는거 나만 그래? 게다가 텔레그램 단체방 초대 스팸까지! 처음엔 ‘나를 걱정해주는건 스팸밖에 없네’ 싶어서 피식 웃었다가 이제는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 분명 어느 금융기관에서 개인정보가 털린 뒤 보도되지 않은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 게다가 몇 주 전엔 아침에 쓰레기를 내놓고 출근한 날 ‘민원24’의 이름으로 쓰레기 분리위반 접수 문자를 받아서 한 10초간 멈칫 했어. 눈 감고 코베이는 세상은 옛날이 아니라 지금인 모양이야. 언제라도 내 등골을 빼먹으려고 혈안인 무형의 적들을 매일 해치우며 살기 참 팍팍하지만 퓨리오사의 마음으로 징징대지 말고 돌진하며 살자고 다짐했어(과연?) 아침에는 에스파의 슈퍼노바와 아마겟돈을 들으며 마인드 셋을 하고 있지.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강해지자!(결론이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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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안 잘레
이번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주연 4명이 이례적으로 공동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는 경쟁부문 중에서 궁금했던 작품 중 하나야. 안무가 ‘다미안 잘레(damien jalet)’가 참여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별개로 좋아했던 것들이 하나로 귀결되는 순간을 경험해본 적 있어? 나에겐 이 안무가가 그래. 평소 현대무용을 좋아해서 작년 LG아트센터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 내한공연을 갔는데 다미안 잘레의 ‘Kites’ 관람 후 안무가에 대해 찾아보다가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실은 모두 동일 인물이었다는 걸 깨달은거야. 먼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사람인 PTA의 단편 <아니마> 원작은 다미안 잘레 대표작 ‘Skid’였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서스페리아>에서 무용을 가장한 기이한 의식의 몸짓도 그의 작품이었어. 게다가 (지금도 있는 지 모르겠지만)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상 전시 ‘Vessel’은 조각가 코헤이 나와와 다미안 잘레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고! 이 모든 조각들이 하나씩 합쳐질 때마다 다미안 잘레는 내가 사랑하고야 말았던 것들의 오리지널이었구나 싶었어. 오늘은 그의 안무를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아니마>와 <서스페리아>에 대해 짧게 소개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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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
<아니마>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한 단 15분의 단편 영화로 톰 요크 앨범 ‘Anima’ 중 수록곡 3곡과 다미안 잘레의 ‘Skid’를 결합한 사실상 뮤직비디오이자 댄스필름이야. 톰 요크가 연기한 <아니마>의 한 남자는 지하철에서 졸다가 한 여자에게 눈길이 머문 순간 잠에 빠져들어. 여자가 두고 내린 짐을 찾아 주기 위해 그녀를 뒤쫓는 남자는 꿈 속일까 현실일까. 마치 죽은 도시의 좀비들처럼 비틀거리는 인파와 앞을 가로막는 바람, 경사를 지나 이른 곳은 초현실의 세계야. 남자는 이윽고 여자와 마주치고 잿빛 도시에 떠오른 햇빛이 남자의 얼굴에 머무는 순간 그의 옅은 미소 건너편의 여자는 아직 존재하는지, 남자가 꿈에서 깨어났는지 알 수 없어. 아니마는 아니무스와 함께 융이 고안한 심리학 단어로 각각 남성의 무의식 속 여성성, 여성의 무의식 속 남성성을 말해. 융은 아니마가 대체적으로 억압되기 때문에 무의식인 꿈에서 나타난다고 보았어. <아니마>에서 남자가 초현실의 세계로 파고들었을 때 안무가 바로 이 작품의 중심을 지탱하는 다미안 잘레의 ‘Skid’야. 34도로 기울어진 설치 무대에서 중력에 저항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담은 ‘Skid’를 남자가 억눌린 무의식을 넘어서려는 저항 과정으로 해석했어. 이 장면은 융이 말하는 ‘아니마’ 사전적 의미 자체보다 마음 깊은 곳에 가둬둔 자아와 내가 합치되는 순간으로의 확장일 수도 있을 테고, PTA의 지독한 사랑 영화 <매그놀리아>와 <펀치 드렁크 러브>의 광기는 사라졌지만 자아가 흔들리는 불안 이후 안식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한 편으론 로맨스처럼 보이기도 해. 무용 공연은 관람 후 그 순간을 소장하고 다시 돌려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데 <아니마>는 공연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데다 영화로서의 느슨한 스토리라인이 있기에 현대무용이 궁금한 사람에게 훌륭한 입문작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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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페리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필모그래피 중 독특한 위치에 서있는 <서스페리아>는 1977년 원작 플롯에 독일의 역사를 겹친 독특한 오컬트 호러영화야. 1977년 미국 출신 수지(다코타 존슨)는 유명 무용수 블랑(틸다 스윈튼)이 이끄는 독일 ‘마르코스 무용단’ 아카데미 오디션에 합격해서 단원들과 합숙생활을 시작해. 평범한 무용단이 아니라는 사실은 바로 알 수 있어. 무용단은 마녀들의 집회이고 무용단원들은 제물인 셈인데 수지는 새로 나타난 완벽한 후보야. 극 중 무용단이 준비중인 블랑의 대표작 ‘폴크(Volk)'는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민중’이라는 뜻으로 나치 시대에는 하나의 ‘국가’를 의미하기도 했어. 그 말인 즉슨 이 안엔 순수한 독일 민족 외의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이야. 영화에서 무용단 운영진들-마녀-부모세대는 나치로, 무용단원들-제물-자녀세대는 반-나치의 새로운 시대로 대치되고 있어. 다미안 잘레는 마녀의 주술이자 과오의 역사이자 세대를 거듭해서 남아야 할 죄책감을 어떻게 ‘폴크’라는 움직임으로 만들었을까. 맨몸의 근육을 활용한 동물적인 움직임에 탁월한 그는 맹목적 믿음에 투신한 집단 광기를 집약한 안무로 충격적인 후반 장면들을 채웠어. 2013년 루브 박물관에서 메두사 신화를 토대로 공연한 ‘les Médusés’가 기반이 되었다고 해. 의상에서도 연결성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영화는 152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진 않았지만 감독이 의도한 역사와 호러의 접목이 매끄럽지 않아서 후반부로 갈 수록 기대에 못 미쳤음에도 다미안 잘레가 영화 언어로 풀어내는 퍼포먼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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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들과의 전방위적 협업
산, 중력, 바람, 행성, 파도 등 그는 주로 추상적인 자연 현상에서 질문을 던지고 무용수는 이성으로 이를 통제하는 인간의 자리에 위치하지 않아. 자연 자체 혹은 자연과 맞닿은 반응을 표현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빌리는 것에 가깝지.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는 아니어서 그의 움직임은 때론 펄떡이는 심장같고 때론 신체를 초월한 지구의 원리같기도 해. 생명의 감각을 묘사하는 그의 시선과 방식이 늘 강렬하게 다가왔어. 게다가 다미안 잘레는 패션, 영화, 음악, 설치미술 등 협업하지 않은 분야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전방위적인 협업을 해나가고 있어. 근 5년 사이의 무대 공연 외 작업만 하더라도 마돈나 ‘Madame X’ 투어에서 오프닝을 포함 4곡의 안무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거미숲의 성>에서 영감을 얻은 타카하시 준 런웨이 쇼 안무를 만들고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로 익숙한 비주얼 아티스트 JR과의 협업으로 프랑스 파리 오페라 극장 팔레 가르니에의 파사드를 뒤덮기도 했어. 위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어. 소품과 구조물을 활용한 연출이 돋보이는 안무가야. 아마 오늘 뉴스레터를 읽으며 나처럼 이름은 몰랐지만 그 사람이 이 사람이었어? 라고 외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처음 알게 된 사람도 있을거야. 분명한 건 예술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앞으로 다미안 잘레의 이름은 계속해서 들릴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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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1
감독마다 배우 사단이 존재해듯 다미안 잘레에게도 여러 차례 작업을 함께한 아티스트들이 꽤 있어. 톰 요크도 <아니마> 이전 <서스페리아>에서 먼저 만났어. 앞서 이야기한 코헤이 나와, JR을 비롯해 류이치 사카모토 등과도 모두 2~3번은 각각 협업한 이력 있더라고. 영상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다미안 잘레와 마지막이자 가장 최근에 사운드로 협업한 공연 'Omphalos'의 트레일러야. 각 분야 천재들이 만나 탄생한 더 천재적인 결과물은 언제나 두근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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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2
마돈나 투어 다큐멘터리 <마담 X>는 티빙에서 볼 수 있대. 나도 뉴스레터를 쓰다 알았어👀 파라마운트 작품이라 2주 뒤인 6월 18일에 서비스가 종료된다고 하니 궁금한 사람들은 서둘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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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답장왔어요📮
From.스윙칩
[RE: 눕방일기 80화]이번 뉴스레터를 보고 주말에 <가여운 것들>을 봤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궁금하긴 했지만 작품들이 조금 기괴할 것 같아 못 보고 있었는데 <가여운 것들>은 순한 맛일 것 같아 시도했지. 레카소의 이야기처럼 '의도된 불쾌함이 넘실대다 간밤의 꿈까지도 흘러 들어오는 간악한 작품'이었어.. 일요일 오후에 봤는데 월요일인 오늘까지 뭔가 모를 찝찝함이 마음을 떠다니고 있거든! 복잡해진 머리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지만, 성악설을 믿는 나는 감독도 성악설을 믿는 건가? 라는 단순한 생각은 정리했어. 벨라가 지식을 얻기 전 한 행위들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악한" 행동이었거든.(왜 메스로 그런 행동을 하는건데ㅠ) 나에게 불쾌감과 복잡함을 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다른 작품을 또 볼 수 있을진 모르겠어!ㅋㅋ 이 와중에 엠마 스톤의 연기는 정말.. 대단하더라! 레카소의 추천이 없었다면 시도하지 못했을거야! :)
📝레이지 카우의 답장
소중한 일요일에 보았다니 저런!(이라고 하지만 이 감독의 작품을 평일에 본다면 더 힘들겠지😂) 레카소의 추천으로 선뜻 손이 가지 않던 작품을 봐주어 너무 고맙고 감동이야! 나도 스윙칩 말대로 사회화된 감정과 지식을 습득하기 이전의 행동은 어째서 사이코패스일 수밖에 없는지, 감독은 왜 반복해서 신체 훼손을 영화에 넣는지 여러 궁금증이 있었어. 호불호를 선뜻 말하기 어려운 작품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다름을 한 번씩 경험하는 건 정말 의미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정성 가득한 후기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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