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공유했던 디지털 자아점검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깜짝 놀랐어.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클릭한 링크는 없었어…나도 사실 이런거 좋아해😚 또 재밌는 거 발견하면 가져올게. 최근 내가 좋아하는 시리즈의 새 시즌이 연달아 나오고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볼 시간이 없어서 스트레스 받아😭 [파친코] 시즌2는 지난주 금요일 첫 회가 공개되었고, [슬로 호시스] 시즌4는 9월 4일,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 시즌2는 10월 16일! 공교롭게도 모두 애플tv 오리지널이네. 애플tv 정액권 선물하기 기능이 있다면 정말 내가 이벤트를 해서라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야. 위 링크에 내가 추천한 글이 있으니 꼭 읽어봐. 그리고 구독자들의 추천작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시도해보고 있으니 같이 보고 싶은 작품 있으면 맨 아래 피드백에 남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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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애니
구독자 추천으로 보게 된 이현중 작가의 웹툰 [환상의 애니]가 몇 주 전 완결되어 에게 소문내고 싶어서 부리나케 달려오고 싶었는데 그 사이 유료로 전환될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지 몰라. 각자 유달리 마음이 가는 주제들이 있지? 내겐 대안가족의 형태나 쌍방구원, 죽음과 생의 모호함, 지난주 [더 베어] 시즌3에서 고백했듯 일에 관한 이야기가 그래. 최근 외부 기고를 한 적이 있었는데 소개글을 고민하다 매주 마감하는 생계형 기획자 겸 마케터라고 적었어. 십 여 년 전에는 생계형 영화 노예라고 적었지. ‘생계형’이란 단어는 내 한 몸을 스스로 먹여살려야하는 나이가 찾아오기 이전엔 쓸 생각도 나지 않았어. 그 이전을 돌이켜보니 일 이전에 꿈이 있었지 싶더라. 아, 낡고 지쳤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요즘 드물게 뱉어보는 단어야. 낮잠을 자지 않으면 오후에 일이 잘 되지 않는 저효율의 생계형 직장인에게도 꿈은 있었다는 통속적인 이야기는 퇴폐적이고 미친 사랑과 회귀한 무림 고수의 마신 정복과 비둘기와 몸이 바뀌어버린 빙의물 사이에서 사실 그다지 힘차게 뿌리내리긴 어려운데 말이지, [환상의 애니]를 본 첫 회부터 갑자기 내 주변의 공기와 시절이 변하는 기분이 들었어. 2000년 초반 처음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붉은 돼지>를 본 한 소도시 고등학교 미술부원 태중이 한국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대학 입시 미술부터 마침내 꿈이 목전에 다다른 것만 같은 때를 지나 꿈꾸던 자신을 혐오하다가 다시금 생계형 인간이 되어 실패했다고 여겼던 자신의 꿈을 꺼내는 이 정직한 여정을 지나고 나면 어떠한 말이 쉽게 나오진 않을거야. 치기 어린 시절의 흑역사쯤으로 묻어둔 언젠가의 나 마저도 안아주고 싶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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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되지 않아 설렜던 꿈의 시작
태중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중고등학교 미술부에 자연스레 가입하긴 했지만 그 끝이나 구체적 목표가 있는 상태는 아니었어. 특히 고등학교 미술부 선배들의 부당한 폭력 속에서 그림 그리는 순간이 행복한 지도 오래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붉은 돼지>가 인생을 바꾼 거야. 날아가는 비행기를 노트 모서리에 그려 페이지를 빠르게 넘겨본 것이 태중이 만든 첫 애니메이션이었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 성하와의 만남 후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작품들을 섭렵하고, 인터넷을 연결하면 전화선이 끊기는 시절 밤 늦게 인터넷 동아리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본격적으로 이쪽 세상으로 넘어온 태중.(이쪽 세상이라는 말 외에 무슨 표현이 있을까?) 할머니와 어린 남동생과 함께 살며 당장 물감을 살 형편도 되지 않는 태중에겐 서울에 있는 유명 미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꿈을 꾸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시작이었어. 자신의 자격을 의심해야 하니까. 하지만 이미 마음에 품어버린 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오르는 무엇을 발견해버렸는데 어떻게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한 번도 풍족한 적은 없었지만 태중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원석같은 열망과 그를 둘러싼 마음들이 빛이 나서 부러웠어. [환상의 애니]에 빠져드는 과정엔 순수하게 좋아서,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라는 귀한 마음을 목격할 수 있어. 특히 우리 다 같이 성공하는거야, 같은 말을 진심으로 나누던 친구들과의 밤샘 후의 노곤한 대화 같은 것들이 예상치 못하게 크게 떠올라서 누군가 내 마음 속에 풍선을 불어 넣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 꿈에 닿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닿을수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미완의 단계가 더 설렐 때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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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무서워서 도망친 사람들
[환상의 애니]는 한편으론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한혜진, 안재훈 감독의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 시퀄같다고도 생각했어. 달리기를 잘하던 이랑이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을 제치자 지는 것이 두려워 달리기를 포기하고, 꿈과 재능이 충분해보이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위축되는 한 시절의 이야기거든. “힘내세요. 우리도 힘낼게요.”라고 끝나는 이 작품을 극장 한구석에서 오열하며 봤던 코스모스 졸업을 앞둔 2011년의 나는 그 때도 영화로 글을 쓰며 살고 싶었고, 마침 어느 영화주간지에서 객원기자를 구한다는 공고가 나서 <소중한 날의 꿈>의 리뷰를 보냈어. 지금처럼 지도 어플리케이션이 좋지 않았던 시절, 일찍 도착 하려고 40분이나 먼저 지하철 역에서 내렸는데 도통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비에 젖은 신발 밑창이 뜯겨져 맨발로 아스팔트를 걸으며 눈물이 차오르는걸 참고 정시에서 1분 넘겨 최종 면접에 도착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해. “늦으셨네요?”로 시작한 자리는 당연히 결과가 좋지 않았고,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겪을 수 많은 실패 중 고작 하나에 불과했고, 오히려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당시에는, 아니 그로부터 한 5년 정도는 그 실패가 나를 꿈을 꿀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은 듯 했어. 꿈꾸는 사람들이 고꾸라지는 시점은 나의 재능이 평범한 사람이 노력하는 수준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아닐까. 차라리 소질이 아예 없었다면 꿈도 꾸지 않았을 텐데,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온 기분인데,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서 빛나고 싶었는데, 라는 생각을 할 즈음의 현실을 [환상의 애니]는 지나고 있어. 야심차게 준비한 단편 애니메이션의 예고편 공개만으로도 한국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탄생했다며 화제를 모으고, 개봉 전부터 이미 초청 강의와 인터뷰가 쇄도하는 등 감독으로서 이미 이름을 알린 태중이 작품을 끝내 완성하지 못하면서 깊은 슬럼프에 빠지게 되거든. [환상의 애니]를 볼 때마다 울고 싶었던 기분의 정체를 알았어. 태중이 결국은 애니메이션이 너무 하고싶어서 도망쳤듯, 나도 실은 계속 글이 쓰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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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하는 사랑
이렇게 뉴스레터를 쓰고 있으면서 무슨 소리냐고? 일이 되지 못해서 나라도 나에게 일로 만들어주자 싶은 것이 뉴스레터거든. 태중이 자신의 실패를 연료삼아 다시 이야기를 만드는 순간에 최고의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어. 영화를 비롯 모든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현실의 기쁨보단 고통, 슬픔, 분노같은 부정적 감정이 더 좋은 연료가 되기 때문이야. 나의 실패들도 재료로 쓸모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야. 태중은 완벽주의에 짓눌리며 첫 번째로 실패했고,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켜서 두 번째로 실패했어. 영화는, 특히나 애니메이션은 수많은 이들의 전방위적인 협력이 없으면 물리적으로 완성할 수 없는 분야잖아. 태중이 오랜 방황 끝에 비로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시 생겼을 때 그의 옆에 사람이 있었어. 사람이 있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을 수도 있지. [환상의 애니]를 두 번째 정주행 하면서 꿈은 결핍과 모멸감을 딛고 일어나는 처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최고가 되고 싶었던 난 이제 종종 오리지널의 사람이 되고 싶다는 표현을 써. 최고는 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불행해지고 싶진 않고, 비록 독창적이진 않아도 분명 저 빙의물과 이 빙의물이 뭔가 다른 컨셉 하나는 있듯, 나도 누군가에게 구분되는 고유의 성질을 지킬 수 있으면 더 이상 내가 손꼽히는 영화기자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매주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나로서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는거야. 그래서 미완의 나를 이렇게 사람들 앞에 꺼내놓고 과거를 딛고 살아보는거지. 지난 주말 <트위스터스>를 봤어. 사실 내 취향은 전혀 아니었지만 말 그대로 토네이도 안에 나를 내던질 만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참 희귀하고 부럽더라고. 최근 최선을 다하는데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한지 계속 생각했는데, 열심히는 살지만 몰입한 적이 없다는 걸 영화를 보며 깨달았어. 사람이든 일이든, 사랑에 빠지는 건 참 에너지 소모가 크고 힘들잖아.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늘 반짝였어. [환상의 애니] 자체가 나한텐 그런 작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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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1
보면 바로 알겠지만 자전적 이야기라 감독의 실제 작품이 언급되는데 극 중 <편지 배달부 린>은 <종이 비행기>인 것 같아. 예고편 링크를 첨부할게. 장편이 정말 궁금해지는 예고편이야. 그리고 단편 <구구>는 왓챠에서 볼 수 있어. 꿈을 찾지만 끝이 없을 수도 있는, 따뜻한 선에 비해 다소 냉소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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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2
비슷한 주제로 눕방일기에서 소개한 [콩트가 시작된다]도 생각났어. 10년 간 도전했던 콩트에 재능이 없음을 받아들여야하는 즈음, 팀의 해체를 앞두고 기로에 놓인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거든. 유쾌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대목이 많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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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답장왔어요📮
From.쿠키
[RE: 눕방일기 89화]요새 보고싶은 콘텐츠가 딱히 없어서 고민 중이었는데 더베어를 추천해 주다니! 시즌1부터 달려보겠어 고마워 :)
#추천작 #길모어걸스
몇 번을 돌려봐도 재밌는!
📝레이지 카우의 답장
[더 베어] 영업 성공할 때마다 살아있음을 느껴(?) 고마워 쿠키! [더 베어]로 난 3시간 정도 떠들고 싶어서 만약 왓챠에도 있었다면 함께 보는 파티를 열었을 것 같아 아쉽다. 즐겁게 보고 후기 남겨줘! 그리고 [길 모어 걸스]는 나의 중고딩 시절을 함께 했던 추억의 드라마인데 이렇게 듣게 되다니 너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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