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는 신작보다 재개봉에 기획전이나 특별상영까지 구작이 더 많은 것 같아. <애프터 썬>에 ‘비포’ 시리즈, 에드워드 양 특별전, <소년 시절의 너>, <비긴 어게인> 등. 최근 갑자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도 특별상영중이더라고. 본격적인 외화 비수기에 접어든걸까? 다 좋아했던 영화라서 반갑기도 하고, 특히 에드워드 양 감독 영화들 중 부채처럼 남은 못 본 영화들도 많아서 최대한 자주 극장에 가보려고 해. 도 극장 재개봉을 바라는 작품이 있어?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여기에 남겨줘. 나는 예상했겠지만 당연히 <후 아 유>😆 오늘 소개할 <솔라리스>도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보고 싶어서 재개봉하면 좋겠다!

#타르코프스키를 위해 극장을 가는 이유

95년 국내 개봉 후, 29년 만에 재개봉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1986)이 작은 규모에도 1만 명을 넘기는 저력을 보이고 있어 놀랐어. 95년 개봉 당시에도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기록했다는, 당시 영화인들에게 전설처럼 전해듣던 바로 그 영화였더라고. 타르코프스키. 지루하고 긴 영화를 만드는 감독.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가 아니라면 위치와 시간을 맞춰 어두운 스크린 앞으로 모이는 행위를 더 이상 쉽게 하지 않는 시대에, 분류해보자면 4DX의 <트위스터스>가 아닌 149분의 필름 영화 <희생>은 앞서 뉴턴이 묘사한 자연과 인간만큼이나 정 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작품인데 어째서 이 시대에 우리는 <희생>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게 되었을까? 집에서 크롬캐스트가 부착된 자그마한 TV(이것도 아는 분이 버리기 전 가져가라고 주신.tmi)로 <솔라리스>를 보는 데 ‘이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일까?’ 불안을 느끼며 바로 이유를 알 것 같더라고. 타르코프스키에 대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아름다운 미장센’이란 단어조차 얼마나 평면적인가 싶어. 그의 영화 안에서 등장하는 녹진한 풀과 바다와 나무 사이 섬 처럼 덩그러니 놓인 집은 낱장의 스크린에 띄워진 현상임을 알면서도, 공간을 둘러싼 안개의 습한 공기가 피부에 닿고, 새가 지저귀는 청아한 소리나 저 멀리 자전거가 지나가며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 등이 들리는 듯 고전 서양화에서 볼 법한 공감각적 깊이감이 느껴져. 그의 영화를 멈추지 않고 보거나, 졸지 않고 보기를 <솔라리스>, <희생> 연달아 실패했지만 그래서 극장에서 봐야하는 아이러니한 아날로그 시네마로의 회귀였지. 최근 책을 소비하는 연령대가 낮아졌다는 ‘텍스트힙’에 대한 보도를 여러 차례 보았어. 허세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는 건데,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죄가 되는 세상에서 이러한 허세는 반가워해도 되지 않을까. 아는 맛, 아는 단어, 아는 감정에만 갇힌다면 우리의 세계는 그만큼 좁아질테니. 언어와 감각의 확장은 감정의 확장이기도 해서 비록 내가 <희생>을 보다 30분 만에 졸았어도, 아예 본 적 없는 나는 느낀적 없는 영화적 언어를 경험했으니, 길고 지루한 예술영화가 허세라 할지라도 지금의 타르코프스키 흥행은 의미있다고 생각해.

#영매의 영화

근 몇 년 사이 MBTI를 시작으로 샤머니즘, 그리고 니체,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 서적으로 이어지는 젊은 세대의 관심사에 흥미를 갖고 있었어. 서로 다른 장르이지만 흥행의 시작은 같은 불안에 기인한다고 봐. 사는 일은 매 순간 불투명한 안개 사이로 보이지 않는 다리에 발을 딛는 일이고, 그럴수록 부조리에 대한 의문은 많아지고 대소사를 떠나 명확한 예언이나 잠언을 구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일상적으로 뿌리내린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마침 <솔라리스>에서 질문하는 사람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려줘. “사람은 행복할 땐 인생의 의미나 영원에 관해선 관심을 갖지 않소. 인생의 막바지에 가서야 질문을 하게 되지.”, “그 끝을 알 수가 없으니 조급해지는 거죠.”,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그런 빌어먹을 질문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오.” 사랑마저 포함하여 안정을 흔드는 감정들이 많아질 수록 우리는 존재 의미, 삶과 고통의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데에 빠져들게 돼. 타르코프스키는 글 대신 영상으로 실존적 질문을 던진 철학가와 다름 없어. 작년부터 닥치는 대로 그 ‘빌어먹을 질문’을 던졌던 사람으로서, 평생 보지 않았던 타르코프스키를 이틀 간 연달아 두 편을 보고난 후 20대 백수시절 감독 한 명씩 순서대로 필모그래피를 섭렵해가던 시기가 떠오르며 오랜만에 타르코프스키의 세계에 한동안 빠졌다 나오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시달린 건, 남다른 영화의 기운에 홀렸다고 밖에 할 수 없어. 인간 세계의 영화라기보다 땅과 하늘 사이, 지구와 우주 사이, 꿈과 현실 사이, 인간의 눈으로는 영원히 볼 수 없는 초월적 공간을 영화를 통해 인간과 잇고 있는 영매의 영화처럼 보이더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솔라리스’의 바다가 인물의 내면을 탐험하는 꿈 같은 시간(흑백)과 환상이 실체로서 나타나는 현재(컬러)가 나뉘어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동안 크리스는 ‘손님’이 되어 나타난 하리에게서 죽은 하리와의 과거를 떠올리고, ‘솔라리스’는 그의 과거를 유영하여 다시금 크리스 앞에 하리를 몇 번이고 되살려 와. 자아가 완전치 않았던 ‘솔라리스’의 하리가 죽은 하리와 별개의 존재로 인식해가는 과정은 일찍이 인간다움의 정의에 대해 섬뜩하게 질문했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크리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닌 죽은 하리일까봐 불안해하거나, 기억 속 크리스로부터 받은 상처를 떠올리며 죽은 하리와 동일시되기를 번복하는 그녀는 더이상 환상이기보다 실체와 기억과 감정과 판단을 가진 독립적 ‘인간’으로서 존재해. 영화 초반 “제 관심사는 진실인데 제게 환상을 설득하는군요”라고 말하던 냉정한 크리스가 하리에게 “난 지구로 돌아가지 않아. 이 정거장에서 살자”고 말하기까지의 일들이야. 외형을 떠나 우리는 어디서부터 인간을 인간이라고 판단할 수 있고, 같은 존재, 다른 존재로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우주를 초극할 야망따윈 없소.

지구의 영역을 우주로 확대할 뿐이지.

더이상의 세계는 필요 없소.

자신을 비춰볼 거울이 필요할 뿐이오.

우리에게 필요도 없고

두려워 할 목표를 좇다니 우습지 않소!

인간에겐 인간이 필요해요.” 

뜻밖에도 <솔라리스>는 사랑에 관한 영화가 아닐까. ‘솔라리스’의 이유가 ‘솔라리스’에 온 이유로, 또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의 이유로, 구하고자 하는 답이 점차 인간만큼의 크기로 작아지며 “처음으로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이해케 하려는 게 아닐까요?”라고 인간의 답을 내려보는 이들을 지켜보다가 든 감상이야. 크리스가 ‘솔라리스’를 떠나 지구의 아버지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의 비밀을 보며 존재하는 지금이 모두 매트릭스가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갑자기 슬프기도, 무섭기도 했어. 무의식에 갇혀서 평생을 살아가는 존재일 수도 있으니까. <인셉션>의 공포를 일찍이 만든 사람이 타르코프스키라니. 그래서 내가 아닌 다른 인간이 필요한가봐. 크리스는 자살한 과학자 기바리안에 대해 이렇게 말해.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소. 두려움보다 더 힘든 것이 이 일을 오직 혼자만 겪고 있다는 생각이 죽인겁니다.”라고. 그리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수치심에 죽은 겁니다. 그 수치심이 바로 인간을 구원케 해요.”라고. 외롭지 않기, 인간으로서 겸허하기. 그러니까 그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관람포인트02

<류이치 사카모토 : 에이싱크>에서 류이치 사카모토가 앨범 작업을 하며 <솔라리스>를 보고 만든 곡이 바로 ‘solari’야. async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야. 류이치 사카모토가 소리의 원형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본 영화가 <솔라리스>인데, 영화가 품고있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의 질문이나, 자신을 투영하는 자연 등을 생각하면 어째서 이 작품을 택했는지 알 법도 해. 같은 질문을 시각화한 건 <솔라리스>, 청각화한 건 ‘solari’ 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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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직장인

[RE: 눕방일기 90화]이번 뉴스레터가 마음에 너무 와닿았던 건 뭘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마음도 이해해. 나는 이 만화를 보면서 비슷한 경험 때문에 ptsd를 느꼈는데 뉴스레터를 보면서 비슷한 마음에 위로를 받았어. 다시 만화를 찬찬히 봐야겠어. 고마워.

📝레이지 카우의 답장

너무 감동이다😭😭 뉴스레터 발행하며 추천한 작품을 봤다는 소리만 들어도 감동이거든? 재미 없었대도 말이야. 그런데 그중에서도 위로가 됐다는 답변을 종종 받는데 그게 가장 뭉클해. 나도 뭔가를 계속 보는 건 위로받고 싶어서가 크거든. 답장 남겨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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